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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 한복판에서 묘지가 공원처럼 펼쳐져 있는 걸 처음 봤을 때, 저뿐만 아니라 주변 제 가족들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장례식장이라면 병원 지하, 형광등 아래 빈소가 전부였는데, 미국에서는 죽음이 아예 다른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그 차이가 결국 뉴욕 증시에 상장된 데스케어 기업 하나로 이어지더군요.

그린우드 묘지 — 묘지가 공원이 된다는 것의 의미
브루클린에 있는 그린우드(Green-Wood) 묘지에 처음 들어섰을 때, 제가 직접 걸어보면서 느낀 건 "여기가 정말 묘지인가"라는 당혹감이었습니다. 언덕과 연못, 19세기 석조 조각들이 야외 박물관처럼 펼쳐져 있고, 브루클린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오르면 맨해튼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린우드는 1838년에 문을 열었고, 현재 미국 국가 역사 랜드마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860년대에는 연간 방문객이 50만 명을 넘어설 만큼 인기 있는 관광지였고, 훗날 센트럴 파크 설계에도 영감을 줬다고 전해집니다. 묘지가 관광지였다는 사실이 낯설다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현장에서 보고 나서야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이 묘지 안에는 19세기 월가의 금융가 레너드 제롬(Leonard Jerome)의 거대한 가족묘도 있습니다. 윈스턴 처칠의 외조부이기도 한 그는 살아서 월가에서 쌓은 자산을 죽어서도 신전처럼 지은 석조 묘로 남겼습니다. 죽음조차 부동산이자 자산이라는 미국식 사고가 그 묘 하나에 압축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지금 그린우드는 매장 공간이 부족해지자 유리로 지은 현대식 납골당을 새로 들였는데, 설계 과정에서 풍수(風水)까지 고려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오래된 봉안당 문화가 미국으로 역수입되는 형국인 셈인데, 이 지점에서 두 나라의 장례 문화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교차한다고 봐도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퓨너럴 홈 — 한국과 미국의 분업 구조 차이
한국에서는 대형 병원 지하 장례식장이 사망 판정부터 안치, 빈소, 발인까지 3일 안에 원스톱(One-Stop)으로 처리해 줍니다. 저는 이 구조가 당연한 줄 알았는데, 뉴욕 주택가 골목에서 퓨너럴 홈(Funeral Home) 간판을 처음 봤을 때 이 당연함이 흔들렸습니다.
미국은 구조 자체가 다릅니다. 병원은 사망 확인과 임시 안치, 시신 인계까지만 담당합니다. 그 이후는 유족이 선택한 퓨너럴 홈, 즉 장례를 전담하는 민간 업체가 맡습니다. 여기서 퓨너럴 홈이란 시신 이송, 방부 처리(에밸밍), 장례 예식 준비, 화장 또는 매장 조율까지 아우르는 독립 사업체를 말합니다. 병원에서 숨지든 집이나 호스피스에서 임종을 맞든 어느 경우에도 퓨너럴 홈이 그 중간을 채웁니다.
뉴저지 잉글우드 병원 바로 옆에 묘지가 붙어 있는 걸 봤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붙어 있어 보여도 병원은 병원, 묘지는 묘지, 장례식장은 또 다른 독립 사업체였습니다. 심지어 병원이 환자들에게 미칠 영향을 우려해 묘지와의 사이에 100피트 완충 지대를 별도로 매입했다는 얘기까지 들었을 땐, 미국에서 죽음은 철저히 분업화된 산업 생태계 안에서 처리된다는 사실이 실감 났습니다.
일반적으로 미국 장례 시스템이 한국보다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조금 더 자세히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각 주체가 전문성을 갖고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구조가 오히려 소비자 선택권을 넓히고, 그 분업 구조 위에서 대형 데스케어 기업의 성장이 가능했다고 봅니다.
SCI — 죽음을 담보로 미래 현금을 선점하는 구조
북미 최대 데스케어(Death Care) 기업인 서비스 코포레이션 인터내셔널(SCI, Service Corporation International)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이 회사가 이렇게 규모가 클 줄은 몰랐습니다. 미국 44개 주와 캐나다 8개 주에 걸쳐 장례 서비스 시설 약 1,500곳, 묘지 500곳, 합산 약 2,000곳의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뉴욕 증시 상장사입니다.
SCI의 성장 방식은 단순합니다. 전국에 잘게 쪼개져 있는 동네 장의사와 묘지를 꾸준히 인수해 하나의 거대 네트워크로 합칩니다. 실제로 2023년 한 해에만 약 1억 달러를 투입해 장례식장 22곳과 묘지 2곳을 추가 인수했고, 2022년에는 1억 8천만 달러를 들여 장례식장 26곳과 묘지 6곳을 사들였습니다. 전국 브랜드인 디그니티 메모리얼(Dignity Memorial)을 내걸면서도 지역 간판은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가 많아, 동네 장례식장처럼 보이지만 뒤에는 대형 네트워크가 붙어 있는 구조입니다.
핵심은 선불 장례 계약(Pre-Need Contract)입니다. 여기서 선불 장례 계약이란 살아 있을 때 미래의 자기 장례 절차와 묘지 공간을 미리 계약하고 비용을 납부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SCI는 이 계약을 통해 2024년 말 기준 170억 달러가 넘는 자금 풀(Float)을 쌓아두고 있습니다(출처: Service Corporation International). 이 돈은 실제 장례를 치르는 시점에야 매출로 인식되지만, 죽음이라는 반드시 오는 수요를 미리 계약해 미래 현금 흐름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보험사의 플로트(Float) 개념과 닮아 있습니다.
SCI 주가는 최근 1년 수익률이 +4% 수준으로 낮은 가격대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실적이 무너진 건 아닙니다. 매출은 소폭 늘었고, 최근 분기 배당도 6% 올렸습니다. 문제는 AI나 반도체처럼 시장이 열광할 고성장 스토리가 없다는 것뿐입니다. 인구 고령화라는 장기 수요는 분명하지만, 화장 전환에 따른 단가 하락이 성장성의 발목을 잡는 구조입니다.
- 운영 네트워크: 미국·캐나다 합산 약 2,000곳 (장례시설 1,500 + 묘지 500)
- 2023년 M&A 규모: 약 1억 달러 (장례식장 22곳, 묘지 2곳 인수)
- 선불 장례 계약 잔고: 2024년 말 기준 170억 달러 초과
- 시장 점유율: 북미 1위이나 추정 매출 기준 20% 미만 — 그만큼 시장이 파편화되어 있음
한국 상조 산업 — 11조 원 선수금, 왜 상장사가 없나
한국에도 구조적으로 SCI와 닮은 산업이 있습니다. 바로 상조 산업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24년 3월 말 기준 한국 상조 가입자는 약 811만 명이고, 선수금(미리 받은 장례 계약금) 규모는 11조 원을 넘어섰습니다(출처: 공정거래위원회). 선수금이란 장례 서비스를 아직 제공하지 않았지만 미리 받아둔 계약금으로, SCI의 선불 장례 계약 잔고와 정확히 같은 개념입니다.
업계 1위 프리드라이프는 이 선수금을 운용해 연 4.7%의 수익률을 기록했는데, 이는 보통 3%대인 보험사 운용 수익률보다 높습니다. 죽음을 미리 판 돈이 사실상 보험사처럼 굴러가는 셈입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에는 SCI라는 순수 상장 데스케어 기업이 있지만, 한국 증시에는 순수 상조 회사가 단 한 곳도 상장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유는 구조적 문제에 있습니다. 선수금이 회계상 부채로 잡히기 때문에 실적이 왜곡되어 보이고, 매출은 실제 장례가 이뤄질 때야 인식되니 가치 평가 자체가 까다롭습니다. 한국에만 있는 업종이라 해외 비교 대상도 마땅치 않습니다.
대신 이 11조 원짜리 자금 풀을 노린 대기업들의 진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웅진그룹은 2025년 프리드라이프를 약 8,900억 원에 인수해 웅진프리드라이프로 편입했고, 렌털 업계 코웨이도 상조에 진출했습니다. 선수금 운용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는 한, 순수 상장 데스케어 기업으로 재평가받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SCI처럼 독자적인 자본 시장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면,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미국에서 묘지 자리를 사면 그 땅을 소유하게 되나요?
A. 아닙니다. 미국에서 묘지에 돈을 내고 얻는 것은 땅 소유권이 아니라 안장권(Interment Right)입니다. 안장권이란 특정 위치에 묻힐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며, 토지 자체는 묘지 운영 법인이 계속 보유합니다. 그래서 묘지 자리가 부동산처럼 사고팔리는 개념과는 조금 다르게 봐야 합니다.
Q. SCI(서비스 코포레이션 인터내셔널)가 동네 장례식장을 인수해도 간판을 그대로 두는 이유가 뭔가요?
A. 지역 신뢰도 때문입니다. 장례 서비스는 특성상 가족들이 수십 년간 거래해온 동네 업체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SCI는 디그니티 메모리얼이라는 전국 브랜드를 보유하면서도, 인수 후에도 지역 간판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겉으로는 동네 장례식장처럼 보이지만 뒤에 대형 네트워크가 붙어 있는 구조를 선택하는 것이죠. 이 방식 덕분에 소비자 이탈을 최소화하면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Q. 미국 화장률이 높아지면 SCI 같은 데스케어 기업에 불리한 건가요?
A. 단가 측면에서는 불리한 면이 있습니다. 전미장례지도사협회(NFDA)에 따르면 미국 화장률은 2025년 기준 63.4%이며, 2045년에는 82.3%까지 오를 것으로 예측됩니다. 화장은 매장보다 단가가 낮아 매출 성장에 압박을 줍니다. 다만 SCI는 화장 이후의 추모 공간 판매와 선불 장례 계약 확대로 수익 무게 중심을 이동시키는 중이라, 완전히 불리하다고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Q. 한국 상조와 미국 선불 장례 계약, 구조가 같은 건가요?
A. 핵심 개념은 같습니다. 둘 다 살아 있을 때 미래 장례 비용을 미리 내고, 회사가 그 돈을 운용하다가 실제 장례 시점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조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미국은 SCI처럼 이 구조를 담은 순수 상장사가 뉴욕 증시에서 거래되는 반면, 한국은 선수금의 회계 처리 방식 때문에 순수 상장 상조 기업이 아직 없다는 점입니다.
결론
뉴저지 병원 옆 묘지에서 시작된 단순한 호기심이 결국 뉴욕 증시 상장 데스케어 기업까지 이어졌습니다. 죽음이라는 가장 보편적인 사건을 퓨너럴 홈, 안장권, 선불 장례 계약, 자금 플로트로 쪼개어 시스템화한 나라가 미국이라는 사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구조가 실감 났습니다.
SCI를 고성장 투자처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170억 달러의 선불금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배당을 이어가는 이 회사가 보여주는 건, 인간의 죽음조차 정교하게 설계된 금융 현금 흐름이 될 수 있다는 자본시장의 본질입니다. 한국의 11조 원 상조 선수금이 아직 순수 상장사를 만들어내지 못한 이유와 비교해 보면, 두 나라가 죽음을 산업으로 다루는 방식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데스케어 산업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관심 있으신 분이라면 SCI의 연간 보고서와 NFDA의 화장률 통계 추이를 함께 보시는 것을 권해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