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빅테크가 바이오 시장에 뛰어든다는 소식이 처음 들렸을 때, 저는 속으로 '또 웨어러블 심박수 측정 수준이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과거 IT·바이오 융합 붐이 기대감만 잔뜩 키우다가 주가 폭락으로 끝났던 장면을 직접 시장에서 지켜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26년 현재 엔비디아와 엔트로픽의 행보를 보면서 이번만큼은 그 판단을 다시 뒤집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I 바이오 인프라 수혜주, 누가 진짜 돈을 버는가
제가 직접 확인하면서 가장 놀랐던 부분은 엔비디아의 행보였습니다. 단순히 GPU를 파는 회사가 아니라, 바이오 신약 개발의 인프라 자체를 장악하겠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엔비디아는 자체 AI 신약 개발 플랫폼인 바이오니모(BioNeMo)를 확장하면서 일라이릴리와 5년간 10억 달러 공동 투자를 선언했습니다. 여기서 바이오니모란 생물학 데이터를 학습한 대형 언어 모델 기반의 플랫폼으로, 단백질 서열이나 분자 구조를 AI로 시뮬레이션하여 신약 후보 물질을 탐색하는 환경을 제공하는 인프라입니다. GPU를 팔아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신약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연산이 자신들의 생태계 위에서 돌아가게 만들겠다는 전략으로 보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엔비디아가 과거에 리커전에 투자했다가 지분을 전략 매도하고, 이후 제너레이트 바이오메디슨으로 관심을 옮긴 과정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행보는 '방향을 찾는 중'이라는 신호입니다. 리커전이라는 AI 바이오텍에 수백억 원을 투자했다가 접은 것은, AI 플랫폼이 스스로 신약 물질을 찾아낸다는 그림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걸 체감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엔트로픽 역시 아이시언트 바이오를 4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직접 AI 바이오 생태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클로드를 만든 회사가 신약 데이터를 다루는 회사를 사들인다는 것 자체가, 이 산업의 무게중심이 어디로 옮겨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AI 바이오 생태계에서 실제로 돈이 돌고 있는 분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환자 모니터링 시스템: 이미 흑자를 내고 있는 국내 기업들이 다수 존재. 단기 현금 흐름 측면에서 가장 안정적
- AI 진단 및 분석: 템퍼스 AI처럼 시가총액 10조 원 이상으로 성장한 사례 존재. 매출 성장률이 매 분기 수십 퍼센트대
- AI 신약 개발 플랫폼: 아직 적자이나 빅파마의 M&A 타겟으로 장기적 가치 보유
단백질 설계와 FDA 규제 변화, 투자 핵심이 여기에 있다
제 경험상 이 산업에서 가장 많이 오해받는 부분이 알파폴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가 알파폴드로 노벨 화학상을 받으면서 "이제 AI가 신약을 만든다"는 기대감이 폭발했는데, 실상은 조금 다릅니다.
알파폴드란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AI로 예측하는 모델입니다.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만 알면 그 단백질이 어떤 모양으로 접힐지 계산해 주는 도구인데, 이걸로 바로 약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단백질을 타깃으로 삼을지 찾아내는 초기 스크리닝 단계에서 수작업 몇 년을 몇 달로 압축해 주는 역할에 가깝습니다. 상용화와는 아직 거리가 있지만, 연구 앞단이 업그레이드되면 결국 임상 진입 속도도 빨라진다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변화입니다.
오히려 지금 당장 가장 현실적인 변화는 FDA 모더나이제이션 액트 3.0(FDA Modernization Act 3.0)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 법안은 전임상 단계, 즉 사람에게 투여하기 전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 단계에서 AI 기반 알고리즘과 오가노이드로 동물 실험을 대체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개선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출처: 미국 FDA).
제가 이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이게 얼마나 실질적인 변화냐'싶었습니다. 그런데 실험용 원숭이 한 마리 가격이 1억 원에 육박하고, 전임상 단계에만 수년이 걸린다는 현실을 알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동물 실험 비용과 기간을 AI 시뮬레이션으로 대폭 줄일 수 있다면 신약 개발의 경제성이 통째로 바뀌는 셈입니다.
또 하나 주목할 흐름은 퍼스트 인 클래스(First-in-class) 방식 대신 기존 검증된 약물을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입니다. 퍼스트 인 클래스란 세상에 전례 없는 완전히 새로운 메커니즘의 약물을 개발하는 접근법으로, 성공할 경우 시장을 독점하지만 실패율이 극도로 높습니다. 반면 기존에 효과가 검증된 타깃의 단백질 구조를 AI로 재설계하여 반감기를 늘리거나 부작용 부위를 제거하는 방식은 성공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리커전, 엑사이언티아 같은 초기 AI 바이오텍들이 희귀 질환의 퍼스트 인 클래스에 도전하다 고전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M&A 수혜주로 접근하는 것이 현실적인 이유
저는 이 분야를 처음 들여다보기 시작했을 때, 일라이릴리처럼 메가 빅파마에 투자하는 것이 AI 바이오 성장의 수혜를 받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들여다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일라이릴리의 시가총액은 이미 수백 조 원대입니다. AI 바이오 사업이 성공한다고 해도 이 거대한 기업의 주가를 몇 배로 움직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반면 AI 바이오 소형 기업의 경우 빅파마나 빅테크의 M&A 타겟이 되는 순간 단기간에 수 배의 수익률이 나오는 구조입니다. 아이소모픽 랩스(Isomorphic Labs)가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여기서 아이소모픽 랩스란 구글 딥마인드에서 분사한 AI 신약 개발 전문 기업으로, 알파폴드의 단백질 구조 예측 기술을 상업적 신약 개발에 적용하는 데 특화된 회사입니다. 비상장 기업임에도 일라이릴리, 노바티스와 각각 조 단위 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했고, 외부 투자 라운드에서 20억 달러 이상을 유치했다는 것은 빅파마들이 이 플랫폼의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신호입니다(출처: 아이소모픽 랩스).
제 경험상 일반 투자자가 AI 바이오 플랫폼의 기술력을 직접 검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저 역시 임상 데이터를 해석하거나 단백질 설계의 우위를 판단할 전문 지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빅파마들이 대신 검증을 마친 기업에 들어가는 전략을 쓰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봅니다. 구체적으로는 아래 기준을 충족한 기업에 한정해서 접근하는 방식입니다.
- 빅파마와 기술 이전 계약을 1건 이상 체결한 이력이 있는가
- AI로 발굴한 후보 물질이 임상 1상 또는 2상에 진입했는가
- 동일 타겟의 기존 약물 대비 임상 데이터에서 유의미한 우위가 확인되는가
RNA 간섭(RNAi)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도 현재 주목받고 있습니다. RNA 간섭이란 특정 mRNA에 결합하여 문제가 되는 단백질의 생성 자체를 차단하는 메커니즘으로, 기존 항체 의약품이 표적으로 삼기 어려운 단백질까지 억제할 수 있어 빅파마들의 기술 도입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국내 RNA 관련 기업들의 흐름도 이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 AI 바이오산업은 기대감이 현실보다 한 발 앞서 있는 단계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엔비디아가 인프라를 깔고, 엔트로픽이 AI 바이오텍을 직접 인수하고, FDA가 전임상 규제를 완화하는 흐름이 동시에 진행 중입니다. 단기적으로는 이미 흑자를 내고 있는 환자 모니터링 기업, 중기적으로는 전임상 자동화 수혜주, 장기적으로는 빅파마의 검증을 통과한 AI 신약 개발 플랫폼으로 접근 시점을 나누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전략으로 보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