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뉴욕 편의점에서의 말보로 한 갑 가격을 듣고 놀랐습니다. 19달러 50센트. 우리 돈으로 2만 8천 원이 넘었습니다. 그 순간 "이 회사 주식은 얼마나 벌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알고 보니 그 질문이 주식 역사상 가장 극적인 반전 중 하나로 이어집니다. 사양 산업이 어떻게 반세기 최고의 주식이 됐는지, 그리고 지금 그 공식이 흔들리고 있는지를 따져보겠습니다.

가격결정력 — 죽어가는 산업이 최고의 주식이 된 이유
뉴욕에서 담배 한 갑이 20달러에 육박하는 건 단순히 가게가 바가지를 씌우는 게 아닙니다. 뉴욕시에는 담배 한 갑 최저 가격 규제가 법으로 정해져 있고, 여기에 뉴욕주 세금 구조가 얹히면서 합법적으로 유통되는 담배 가격이 자연스럽게 그 수준까지 올라갑니다. 제가 직접 여러 편의점의 담배 가격을 알아봤는데, 가장 싼 곳도 15달러 아래로는 내려가질 않더군요.
이 구조가 주식 투자와 연결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와튼대 제러미 시겔 교수는 1957년 S&P 500 출범 당시 구성 종목들을 2003년 말까지 배당 재투자 기준으로 추적했습니다. 여기서 배당 재투자란 받은 배당금으로 같은 주식을 계속 사들여 복리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식입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1위가 반도체도 석유 메이저도 아닌 담배 회사 필립모리스였으니까요.
1957년 1,000달러를 S&P 500 지수에 넣었다면 2003년 말 약 12만 5,000달러가 됐습니다. 같은 돈을 필립모리스에 넣었다면 약 460만 달러(출처: Wharton School, Jeremy Siegel Research)입니다. 비율로 따지면 지수 대비 약 37배. 이게 가능했던 이유가 바로 가격결정력(Pricing Power)입니다. 가격결정력이란 경쟁 압력 없이 제품 가격을 자유롭게 올릴 수 있는 기업의 힘을 말합니다.
역설은 여기 있습니다. 산업이 쇠퇴하니까 새 경쟁자가 들어오지 않았고, 남은 기업은 판매량 감소 속도보다 빠르게 가격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공장에 새로 투자할 필요도 없으니 들어오는 현금이 고스란히 쌓였고, 그것이 배당과 자사주 매입으로 흘러나왔습니다. 죽어가는 산업이기 때문에 최고의 주식이 될 수 있었다는 아이러니한 공식입니다.
- 1957~2003년 배당 재투자 기준 수익률: 필립모리스 약 460만 달러 vs S&P 500 약 12만 5,000달러
- 가격결정력의 원천: 신규 진입자 부재 + 끈끈한 중독성 소비재 특성
- 잉여현금흐름(FCF) 극대화: 설비 투자 부담 없이 번 돈 대부분을 주주에게 환원
배당 재투자 — 알트리아와 필립모리스, 같은 뿌리 다른 운명
뉴욕 그랜드 센트럴역에서 한 블록만 걸어가면 파크 애비뉴 120번지에 오래된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1982년 필립모리스가 본사로 쓰려고 지은 사옥인데, 로비에 휘트니 미술관 분관까지 넣었습니다. 담배 회사가 예술 후원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만들려 한 거죠. 그런데 2008년 알트리아는 이 건물을 5억 2,500만 달러에 팔고 버지니아 리치먼드로 본사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 건물에 나중에 들어온 임차인이 뉴욕의 강력한 금연 정책을 밀어붙인 블룸버그 시장의 회사였다는 사실이 묘하게 씁쓸했습니다.
2003년 회사는 사명을 필립모리스에서 알트리아(Altria)로 바꿨습니다. 줄소송 합의금으로 담배 이미지가 모회사 가치를 갉아먹자 브랜드를 분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2008년 3월 28일, 알트리아는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PMI)을 분사했습니다. 분사란 기존 주주에게 신설 법인 주식을 지분 비율대로 나눠주는 방식인데, 이때 알트리아 1주당 PMI 1주를 1대 1로 지급했습니다. SEC 공시 서류에도 당시 PMI 주소지가 파크 애비뉴 120번지로 찍혀 있습니다(출처: SEC EDGAR, PMI 공시 자료).
분사 이후 두 회사의 성격은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알트리아는 미국 담배 시장에서 말보로로 버티며 배당을 꾸준히 올리는 구조입니다. 회사는 공식적으로 "56년간 60번째 배당 인상"이라고 표현하는데, 솔직히 이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2008년 PMI 분사로 해외 사업 몫이 떨어져 나갔으니, 56년이라는 연속성은 분사 이전 필립모리스 시절까지 통째로 이어받은 숫자입니다. 마케팅 문구로는 맞지만, 알트리아 단독 법인의 연속성을 따지면 논란이 생기는 부분입니다.
주가 흐름도 다릅니다. 알트리아는 현재 주가 73달러 수준에서 연간 4달러 이상의 배당을 지급해 배당 수익률이 약 5.7%에 달합니다. 배당 수익률이란 주가 대비 연간 배당금 비율을 뜻하며, 주가 변동 없이도 현금을 수취할 수 있는 고배당주의 핵심 지표입니다. 반면 PMI는 2026년 무렵 190달러대 신고가를 찍었다가 조정받은 성장주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제 경험상 두 종목을 같은 담배주로 묶어 평가하는 건 이제 맞지 않습니다.
전자담배 — PMI가 앞서고 알트리아가 뒤처진 구조
출장길에 공항 면세점에서 아이코스(IQOS) 부스가 담배 매대 절반을 차지하는 걸 처음 봤을 때가 불과 몇 년 전입니다. 지금은 주변 흡연자들 중 연초 담배를 쥔 사람보다 궐련형 전자담배나 니코틴 파우치를 쓰는 사람이 더 눈에 띕니다. 이 변화가 주가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습니다.
궐련형 전자담배(Heated Tobacco Product, HTP)란 담배를 태우지 않고 가열해 니코틴을 흡입하는 방식으로, 연소 없이 증기를 내뿜기 때문에 '무연 제품'으로 분류됩니다. 필립모리스는 이 전환에서 확실히 앞서 있습니다. 2024년 기준 필립모리스 전체 매출에서 연기 없는 제품 비중이 41.5%까지 올라왔고, 니코틴 파우치 '진(Zyn)'은 미국에서만 7억 9,400만 캔이 팔렸습니다. 니코틴 파우치란 담배 잎 없이 합성 니코틴만을 담은 소형 파우치로, 씹거나 잇몸에 붙여 쓰는 연기 없는 니코틴 제품입니다.
알트리아는 상황이 정반대입니다. 자체 파우치 브랜드 '온(on!)'은 시장에서 Zyn에 밀리고 있고, FDA 허가를 받은 전자담배 '엔조이(NJOY)'도 쉽지 않았습니다. 핵심 제품인 엔조이 에이스가 줄(Juul)과의 특허 분쟁으로 ITC(국제무역위원회) 수입 판매 제한에 걸리면서 2023년 1분기 출하량이 급감했고, 알트리아는 8억 7,300만 달러에 달하는 손상차손까지 반영해야 했습니다. 손상차손이란 보유 자산의 가치가 장부 가격 아래로 떨어졌을 때 그 차액을 손실로 인식하는 회계 처리입니다. 미국 내 아이코스 판매권도 2024년 계약 종료로 PMI에 반납했습니다.
이 그림은 한국의 KT&G도 거울처럼 마주하고 있습니다. 미국 성인 흡연율이 2024년 기준 9.9%로 처음으로 10% 아래로 내려온 상황에서, KT&G도 가격 방어와 궐련형 전자담배 '릴'로 버티고 있습니다. 2023년에는 필립모리스와 15년 독점 협력 계약을 맺어 해외에서는 필립모리스가 릴을 유통해주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알트리아와 필리봄리스가 먼저 받았던 그 질문, "무연 전환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이제 KT&G가 받고 있는 셈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알트리아와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PMI)은 왜 다른 회사인가요?
A. 원래 같은 회사였지만 2008년 3월 알트리아가 PMI를 분사하면서 분리됐습니다. 미국 내 담배 사업은 알트리아가, 미국 밖 해외 사업은 PMI가 맡는 구조입니다. 같은 말보로 브랜드라도 미국에서 사면 알트리아 매출, 그 외 국가에서 사면 PMI 매출이 됩니다.
Q. 담배주가 배당 수익률이 높은 이유가 뭔가요?
A. 담배는 설비 투자 부담이 적고 소비자 이탈이 느린 중독성 소비재여서 잉여현금흐름(FCF)이 꾸준히 발생합니다. 잉여현금흐름이란 영업활동에서 번 돈에서 설비 투자 비용을 뺀 실질 현금을 말하는데, 이 돈이 배당과 자사주 매입으로 집중되기 때문에 배당 수익률이 높게 유지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Q. 제러미 시겔 교수 연구가 지금도 유효한가요?
A. 시겔 교수의 연구는 1957년부터 2003년까지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며, 이후 상황은 종목마다 결이 다릅니다. 알트리아는 주가 정체 속 배당 방어주로 남은 반면, PMI는 무연 전환으로 성장주 평가를 받고 있어 단순히 과거 성과를 현재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산업 전반의 흐름과 개별 기업의 전환 속도를 함께 봐야 합니다.
Q. KT&G도 장기 배당주로 볼 수 있나요?
A. 단기적으로는 계당 가격 방어와 안정적 현금흐름으로 배당 매력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다만 릴이라는 궐련형 전자담배 플랫폼의 해외 경쟁력과 필립모리스와의 협력 성과가 장기 밸류에이션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알트리아처럼 무연 전환에 뒤처질 경우 배당 방어 외에 주가 재평가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결론
담배주를 단순히 "사양 산업 고배당주"로 뭉뚱그리던 시절은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주식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 담배 종목을 검토하면서 가장 놀랐던 건, 죽어가는 산업에서 경쟁이 사라질수록 가격결정력이 강해지고, 그 힘이 배당 재투자 복리와 맞물리면 시장 전체를 압도하는 성과가 나올 수 있다는 역설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공식이 두 번째 챕터로 넘어갔습니다. 연기 없는 니코틴 플랫폼에서 먼저 자리를 잡은 PMI와 뒤처진 알트리아의 주가 격차가 이를 증명하고 있고, KT&G도 같은 갈림길 앞에 서 있습니다. 담배 섹터에 관심이 있다면, 두 회사를 비교해가며 무연 전환 속도와 자유현금흐름의 방향성을 함께 추적해 보시길 권합니다. 어떤 답을 내놓느냐에 따라 두 회사의 10년 후 주가는 상당히 다른 위치에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