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주변에서 "애플은 AI에서 밀렸으니 이제 끝 아니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실적 발표 숫자를 직접 들여다보고 나서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AI 투자에 수백억 달러를 쏟아붓는 빅테크들을 제치고 애플이 글로벌 시가총액 2위 자리에 올라선 이유, 숫자로 따져보면 생각보다 훨씬 단순합니다.

AI 안 해도 49% 마진, 애플 실적의 민낯
친구들과 주식 얘기를 하다 보면 "요즘 AI 관련주 아니면 답 없다"는 말이 꼭 나옵니다. 저도 한동안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애플 실적을 보고 나서는 그 믿음이 조금 흔들렸습니다.
이번 분기 애플의 매출 총이익률(Gross Margin)은 49.3%를 기록했습니다. 매출 총이익률이란 제품을 팔아서 원가를 뺀 뒤 남는 이익의 비율로, 쉽게 말해 100원짜리 물건을 팔면 49원이 고스란히 남는다는 뜻입니다. 아이폰 출시 이래 역대 최고 수준입니다.
팀 쿡 CEO는 메모리 업체들이 가격을 대폭 인상해 비용 부담이 크다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했습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같은 메모리 공급사들에 대한 압박이었습니다. 실제로 애플은 중국 반도체 기업인 창신 메모리(CXMT), 양쯔 메모리(YMTC)와 협상을 벌이며 미국 정부에 중국 내 아이폰용 부품 조달 허용을 요청하는 로비까지 진행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 두 기업은 현재 미국 정부의 거래 제한 명단, 이른바 '엔티티 리스트(Entity List)'에 올라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정작 49%의 마진율을 보면서 든 솔직한 생각은 '메모리 값이 좀 올랐다는데 49%가 과연 힘든 건가?'였습니다. 비용 부담을 호소하면서도 역대 최고 마진을 찍는 기업이라니, 이건 애플만이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하드웨어 판매도 마찬가지입니다. "혁신이 없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아이폰 17이지만, 전년 동기 대비 판매량이 23% 급증했습니다. 특히 중화권 매출이 28% 폭발한 것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연초 대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마이크로소프트와 비교하면, 5년간 128% 오른 애플 주가가 허황된 숫자가 아님을 실감했습니다.
- 매출 총이익률 49.3% — 아이폰 출시 이후 역대 최고
- 아이폰 17 판매량 전년 동기 대비 +23%
- 중화권 매출 전년 동기 대비 +28% 급증
- 최근 1년 주가 상승률 50% 이상, 5년 누적 128%
- 마이크로소프트 연초 대비 주가 -2% 대 애플 두 자릿수 플러스
빅테크는 AI에 퍼붓는데, 애플은 오히려 줄였다
일반적으로 AI 시대에 뒤처진 기업은 주가도 부진할 거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좀 다릅니다. 오히려 AI 투자를 안 한쪽이 최근 주가 성과가 더 좋았습니다.
구글(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은 설비 투자를 뜻하는 자본 지출(CAPEX, Capital Expenditure)을 전년 대비 각각 95%, 89%, 42%씩 늘렸습니다. CAPEX란 공장, 서버, 데이터센터처럼 미래 수익을 위해 지금 쓰는 큰돈을 말합니다. AI 인프라에 막대한 자본을 쏟다 보니 현금 흐름이 나빠지고, 이를 메우기 위해 채권까지 발행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채권 발행은 기업이 시장에서 돈을 빌리는 행위인 만큼, 재무 부담이 커진다는 신호로 시장은 읽습니다.
반면 애플의 CAPEX는 전 분기 대비 오히려 19% 줄었습니다. M7(매그니피센트 세븐, 미국을 대표하는 7개 빅테크 기업) 전체가 1년간 700억 달러의 AI 투자를 발표하는 사이, 애플의 연간 지출은 127억 달러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아마존이 한 분기에 쓰는 돈보다도 적습니다. 참고로 M7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아마존, 메타, 엔비디아, 테슬라를 가리킵니다(출처: Apple Investor Relations).
제가 이 숫자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애플이 이렇게까지 AI 투자를 안 하고 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AI에 들어가야 할 돈이 절약되니, 그 여유 자금은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 같은 주주 환원으로 흘러갑니다. 주주 환원이 활발해지면 주가는 자연스럽게 받쳐지는 구조입니다.
시리(Siri)의 AI 경쟁력 부재, 가정용 로봇과 스마트 글래스의 출시 지연 등 분명히 약점은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는 경쟁사가 하고, 우리는 하드웨어로 번다"는 역발상 경영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시장에서 정확히 먹히고 있습니다. 물론 이 전략이 3~5년 뒤에도 유효할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건 솔직히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신임 CEO 존 터너스, 폴더블 아이폰으로 승부수
팀 쿡이 4월 공식 은퇴를 선언하면서 오는 9월부터 애플의 수장은 존 터너스(John Ternus, 1975년생)로 바뀝니다.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당연히 AI 출신 인물을 앉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알아보니 예상과 전혀 달랐습니다.
존 터너스는 AI 전문가가 아닙니다. 아이패드, 에어팟, 맥북 에어, 아이폰 에어 등 굵직한 하드웨어 라인업을 직접 진두지휘해 온 골수 제품 개발자입니다. 그의 약력에서 AI나 소프트웨어 관련 이력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CEO 교체 공식 보도 자료 어디에도 AI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점은 저도 처음 봤을 때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세계 시가총액 2위 기업의 CEO 선임 자료인데 AI가 한 줄도 없다니, 이건 의도된 메시지로 읽힙니다.
물론 그에게도 흑역사는 있습니다. 3,500달러(약 500만 원) 짜리 혼합 현실(MR, Mixed Reality) 헤드셋인 비전 프로(Vision Pro)가 대표적입니다. 혼합 현실이란 현실 세계와 디지털 콘텐츠를 겹쳐 보여주는 기술로, 쉽게 말해 쓰면서 동시에 현실도 보이고 가상도 보이는 안경입니다. 출시 초기 반짝 화제가 됐지만 지금은 팀 쿡 본인도 "얼리어댑터를 위한 제품"이라고 말을 바꿨을 만큼 대중화에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존 터너스가 취임 직후 꺼내들 승부수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바로 폴더블 아이폰입니다. 삼성 갤럭시 Z 폴드 시리즈가 첫 출시된 지 7년이 지난 지금에야 내놓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타이밍 자체는 늦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재폰"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는 폴더블 시장에 애플 마크를 달고 진입할 경우 인식 자체를 바꿔버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격은 300만 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되며, 빠르면 2026년 하반기, 아이폰 18 프로와 함께 출시될 전망입니다(출처: SEC EDGAR, Apple 분기 보고서).
한편 삼성전자도 갤럭시 Z 폴드 6 울트라와 함께 태블릿 수준의 가로폭을 자랑하는 '와이드(Wide)' 모델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폴더블 시장에서 애플과 삼성의 정면 승부가 올 하반기 IT 시장 최대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애플이 AI 투자를 안 해도 시가총액 2위를 유지할 수 있나요?
A. 지금 당장은 가능하다는 게 실적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아이폰 판매량 23% 증가와 49%대 매출 총이익률이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AI 기반 서비스가 본격화되는 3~5년 뒤에도 이 구조가 유효할지는 미지수입니다. AI 없이 하드웨어만으로 버티는 전략은 단기 주주에게는 유리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Q. 폴더블 아이폰이 너무 늦게 나오는 거 아닌가요?
A. 타이밍만 보면 삼성보다 7년 늦은 건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시장에 늦게 진입하면 불리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애플은 역사적으로 이 공식을 꽤 자주 깨왔습니다. MP3 플레이어, 태블릿, 스마트워치 모두 후발 주자였지만 시장을 재정의했습니다. 폴더블도 비슷한 흐름이 될 수 있지만, 비전 프로 전례가 있어 이번만큼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Q. 존 터너스는 팀 쿡과 어떤 점이 다른가요?
A. 팀 쿡이 공급망 관리와 수익성 극대화에 탁월한 운영형 CEO였다면, 존 터너스는 실제 제품을 설계하고 출시해 온 제품 개발형 CEO입니다. 아이패드, 에어팟, 맥북 에어, 아이폰 에어 등을 직접 진두지휘했습니다. AI보다 하드웨어 혁신을 통해 애플의 성장을 이끌겠다는 방향성이 CEO 선임 자체에서 드러납니다.
Q. 애플이 중국 메모리 업체와 거래하면 삼성·SK하이닉스에 악영향이 있나요?
A. 단기적으로는 악영향이 될 수 있습니다. 애플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에서 메모리를 수급하는 주요 고객입니다. 만약 창신 메모리(CXMT)나 양쯔 메모리(YMTC) 같은 중국 업체로 일부 물량이 이동하면 단가 압박이 생길 수 있습니다. 다만 두 업체가 미국 엔티티 리스트에 올라 있어 실제 거래가 성사되려면 미국 정부의 허가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결론
정리하면, 지금 애플의 시가총액 2위는 AI 때문이 아니라 AI와 무관하게 실적이 탄탄하기 때문입니다. 49%에 달하는 매출 총이익률, 두 자릿수 판매 성장, AI 투자를 줄이면서 확보한 주주 환원 여력이 맞물린 결과입니다. 제가 처음 "AI도 못 하는 애플이 2위?"라고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이 숫자 앞에서는 더 이상 의아하지 않았습니다.
9월 존 터너스 취임과 폴더블 아이폰 출시가 맞물리는 하반기가 애플의 진짜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아재폰"이라는 폼팩터에 애플 마크를 붙였을 때 시장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리고 비전 프로의 실패를 딛고 터너스가 어떤 하드웨어 철학을 보여주는지를 지켜볼 계획입니다. 관심이 생기셨다면 애플의 분기 실적 보고서를 직접 확인해 보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