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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2023년 초까지만 해도 '긴축 공포'라는 헤드라인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금리가 오르고, 연준이 돈을 거둬들이고 있다는데 무슨 유동성이냐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시장에서 먼저 움직인 건 비트코인과 금이었습니다. 뉴스가 아니라 자본의 흐름이 먼저 답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지금 2026년 8월, 그 상황이 거의 똑같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유동성 사이클 — 겉과 속이 다른 재무부의 카드
이번 주 시장에서 가장 눈에 띈 건 미국 장기 국채 금리가 2019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다시 경신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뉴스를 보자마자 2023년 기억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그때도 똑같은 뉴스가 쏟아졌고, 정작 시장은 그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거든요.
재무부가 꺼내든 카드는 '바이백(Buyback)'입니다. 바이백이란 재무부가 이미 발행한 장기 국채를 시장에서 다시 사들이면서 장기 금리 상승 압력을 낮추는 기법인데, 쉽게 말해 단기 국채를 새로 찍어 그 돈으로 장기 국채를 사주는 구조입니다. 금리 방어를 위한 돌려막기인 셈입니다.
JP모건은 이를 두고 "주택담보대출 이자를 신용카드로 돌려막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고, 노무라는 "총상처에 작은 밴드를 붙이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도 "채권 시장은 가스라이팅이 통하지 않는다"며 날을 세웠습니다(출처: JP모건 리서치). 비판론자들의 핵심은 하나입니다. 근본적인 재정 적자 축소 없이는 이 기법이 달러화 가치 희석과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다른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비판이 맞든 틀리든 간에, 이 정책이 집행되는 동안 어떤 자산이 움직였는지 보셨습니까?
바이백 발표 시점을 기준으로 금과 비트코인, 원자재 섹터가 즉각적으로 반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스텔스 QE(Stealth QE)의 작동 방식입니다. 스텔스 QE란 공식적인 양적 완화(QE) 선언 없이 재무부나 연준의 비가시적 채널을 통해 시장에 유동성이 공급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수도꼭지는 잠겨 있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구조입니다.
2023년 3월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연준이 지역은행 파산 위기를 막기 위해 BTFP(Bank Term Funding Program)를 가동했을 때입니다. BTFP란 연준이 은행들에 단기로 대규모 유동성을 빌려주는 긴급 지원 프로그램인데, 당시 파월 의장은 "양적 완화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시장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 가장 먼저 바닥을 친 자산이 비트코인이었고, 이어 그해 11월 재무부의 단기채 전환 발표로 본격적인 유동성 랠리가 시작됐습니다.
재무부 바이백, 11월 4일까지가 의미하는 것
이번 바이백 프로그램에서 제가 가장 눈여겨본 것은 시행 기간입니다. 공식 발표 기준으로 11월 4일까지 운영하겠다고 명시했는데, 미국 중간선거는 11월 3일입니다. 이게 우연일까요? 저는 선거 전까지만큼은 금융 시장 방어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의지가 담긴 일정이라고 봅니다.
2024년, 지금의 재무장관 배센트는 야당 입장에서 전임 재무장관 옐런의 동일한 기법을 "경제를 좋아 보이게 하려는 정치적 조작"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가 정확히 같은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제가 이걸 보면서 실소가 나왔습니다. 어느 행정부든 권좌에 오르면 도구는 같아진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 셈입니다.
- 재무부 바이백 — 단기채 발행으로 장기채를 사들여 장기 금리 상승 압력을 억제
- 스텔스 QE — 공식 선언 없이 비가시적 경로로 유동성을 공급하는 현상
- 달러 약세 전환 — 유동성 확대 기대감이 달러 매도로 이어지며 대체 자산 강세 촉발
- 수혜 자산 — 금, 비트코인, 원자재, 혁신 바이오 (유동성에 가장 민감한 섹터)
달러 약세와 순환매 — 뉴스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
제가 직접 겪어보니, 시장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은 나쁜 뉴스가 도배될 때 대체 자산을 손에 쥐고 있는 것입니다. 2022년 한 해를 내내 버티면서 "언제 이 하락장이 끝나나" 싶었는데, 정작 전환점은 가장 공포스러운 뉴스들이 절정에 달했을 때 왔습니다. 지금 헤드라인을 보면 비슷한 냄새가 납니다.
달러 약세(Weak Dollar)란 미국 달러화의 구매력이 다른 통화 대비 하락하는 현상인데, 일반적으로 달러가 약세로 전환되면 금과 원자재처럼 달러로 표시된 자산들의 가격이 자동적으로 올라가는 효과가 생깁니다. 재무부가 유동성을 풀수록, 달러 공급이 늘어날수록 달러 약세 압력이 커지는 구조입니다(출처: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FRED).
8월 들어 실제로 이 흐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 내내 주요 자산군 중 최하위권이었던 비트코인과 금은 1월부터 6월까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습니다. 암호화폐 관련주인 코인베이스와 로빈후드는 올해 반토막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런데 8월부터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순환매(Rotation)입니다. 순환매란 한 섹터에서 자금이 빠져나와 다른 섹터로 이동하는 현상으로, 주도 섹터가 숨 고르기에 들어갈 때 소외 섹터로 관심이 옮겨가는 특성이 있습니다. 올해 주도주였던 AI 인프라, 반도체, 데이터 센터 섹터가 고금리 부담과 데이터 센터 관련 정치적 규제 압박 속에서 횡보하는 사이, 그동안 소외됐던 자산들이 반등을 시도하는 국면입니다.
데이터 센터 규제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AI 기업 Anthropic이 기업공개(IPO) 신청서에 데이터 센터에 대한 지역 사회 반발과 정치적 규제를 '주요 리스크'로 명시했다는 점은 제 눈에 꽤 의미있게 들어왔습니다. 성장성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변수가 사업 리스크로 공식 등재된 것이거든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이 순환매가 일시적 반등에 그칠까요, 아니면 추세 전환의 시작일까요? 저는 아직 단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2023년 3월 연준 개입, 2023년 11월 재무부 개입이라는 두 번의 유동성 시그널이 이어지면서 본격적인 랠리가 시작됐던 패턴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나오는 시그널들을 가볍게 보기 어렵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AI 성장을 통해 부채 비율을 낮추겠다는 일관된 기조를 유지하고 있고, 이 맥락에서 암호화폐 법제화(9월 15일 데드라인)와 스테이블코인 규제 명확화도 미국 채권 수요를 늘리려는 재무부 전략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해관계가 정렬된 정책은 생명력이 길 수 있습니다.
물론 반론도 있습니다. 달러가 약세인 척하다 반전될 경우, 지금 반등한 금·비트코인·원자재 자산들은 다시 하락 추세로 돌아설 수 있습니다. 재무부 장관이 신이 아닌 이상 의지대로 다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냉정하게 보고 있습니다. 제가 매수를 권하는 것이 아니라, 유동성 사이클의 메커니즘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스텔스 QE가 뭔지 정확히 모르겠어요. 양적 완화랑 다른 건가요?
A. 양적 완화(QE)는 중앙은행이 공식적으로 "돈을 풉니다"라고 선언하고 자산을 매입하는 방식입니다. 스텔스 QE는 이런 공식 선언 없이 재무부나 연준이 비가시적 채널, 예를 들어 단기채 발행 확대나 바이백 프로그램을 통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겉으로는 긴축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돈이 풀리는 구조여서 '몰래 하는 돈 풀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2023년에도, 지금도 같은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는 게 핵심입니다.
Q. 금리가 이렇게 높은데 금이나 비트코인에 투자해도 되나요?
A. 이 질문이 가장 많이 나오는 이유가 있습니다. 고금리 환경에서는 이자가 없는 금이나 비트코인이 불리하다는 상식 때문입니다. 그런데 2023년 3월에도 금리가 5%를 넘는 상황에서 비트코인이 먼저 반등했습니다. 유동성 공급 기대감이 금리 부담을 앞설 때 이런 일이 생깁니다. 매수를 권하는 것이 아니라, 유동성 사이클 국면에서는 교과서적 금리 논리가 잠시 역전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두시면 도움이 됩니다.
Q. 재무부 바이백이 결국 달러 가치를 떨어뜨리는 건 아닌가요?
A. 맞습니다. 그래서 비판론자들이 "달러가 엔화처럼 평가절하 소용돌이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는 겁니다. 단기채를 찍어 장기채를 사들이는 방식은 결국 달러 공급을 늘리는 것이고, 이는 달러 약세 압력으로 이어집니다. 긍정론자든 비판론자든 공통적으로 달러 약세 방향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 달러 약세를 나쁘게 보느냐, 투자 기회로 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Q. AI 인프라 주식은 이제 끝난 건가요?
A. 끝났다기보다는 잠시 숨 고르기 국면으로 보입니다. 데이터 센터에 대한 지역사회 반발과 정치적 규제 이슈, 그리고 Anthropic 같은 대형 AI 기업의 IPO로 인한 자금 흡수 효과가 단기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AI 성장 사이클이 끝났다는 시각보다는, 다른 섹터로 자금이 잠시 빠져나가는 순환매 국면이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하지 않을까요?
결론
제가 이번 8월을 보면서 계속 떠올린 한 가지가 있습니다. 2022년 한 해 내내 하락장을 버티다가 가장 공포스러운 뉴스들이 쏟아지던 시점에 전환점이 왔다는 기억입니다. 지금도 재정 위기, 금리 급등, 달러 신뢰도 하락이라는 무거운 헤드라인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 뒤편에서 재무부는 두 차례 이례적인 시장 개입을 이미 단행했습니다.
이것이 2023년의 데자뷰가 될지, 아니면 땜질 처방으로 끝날지는 더 지켜봐야 합니다. 다만 지금 이 시점을 기록해두는 것만으로도 앞으로의 투자에서 써먹을 수 있는 중요한 레퍼런스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헤드라인이 아니라 자본의 흐름을 읽는 연습, 그게 결국 이 시장에서 오래 살아남는 방법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