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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캐나다 산불 연기가 뉴욕 하늘을 뒤덮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번에도 보험사들이 엄청난 손실을 입겠구나"라고 직관적으로 생각했을 겁니다. 저도 똑같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주의깊게 들여다보면, 그 보험사들 뒤편에서 조용히 구독료를 받아가는 회사가 따로 있습니다. 재난이 날수록 오히려 더 필요해지는 데이터 기업, 베리스크(Verisk)의 이야기입니다.

재난이 날 때마다 돈의 주인이 바뀐다

1835년 12월, 뉴욕 로어 맨해튼에서 대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영하 17도의 강풍 속에서 번진 불은 17개 블록, 건물 700채를 집어삼켰고 피해액은 당시 기준 2,000만 달러,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6억 달러가 넘습니다. 뉴욕의 화재보험사 26곳 중 23곳이 하룻밤 사이에 파산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코네티컷 하트퍼드에서 다르게 움직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트퍼드 화재보험의 사장 엘리팔리 테리는 눈길을 달려 뉴욕으로 내려와 폐허가 된 금융지구 한복판에서 선언합니다. "하트퍼드는 모든 청구를 지급한다." 전재산을 건 도박처럼 보였지만, 사실 테리는 이미 계산을 마친 상태였습니다. 하트퍼드가 뉴욕에서 판 보험이 애초에 많지 않았고, 실제 지급액은 65,000달러에 그쳤습니다. 대신 그는 23개 경쟁사가 보험금을 내지 못하는 시장에서 유일하게 지급하는 회사가 됐고, 그 자리에서 신규 보험까지 팔았습니다.

이 장면이 제게 인상 깊었던 이유는, 불이 꺼진 뒤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지급 능력(Solvency)을 증명한 회사가 시장 전체를 가져갔습니다. 여기서 지급 능력이란 단순히 돈이 많다는 것이 아니라, 보험계약자에게 약속한 보험금을 실제로 이행할 수 있는 재무적 건전성을 의미합니다. 하트퍼드는 이후 미국 보험 산업의 수도로 성장했습니다.

  • 1835년 뉴욕 대화재 피해액: 당시 2,000만 달러(현재 가치 6억 달러 이상)
  • 뉴욕 화재보험사 26곳 중 23곳 하룻밤 파산
  • 하트퍼드의 실제 지급액: 65,000달러 — 계산된 결단이었다
  • 결과: 뉴욕 보험 시장의 신뢰가 하트퍼드로 넘어감
요약: 위기의 순간, 지급 능력을 증명한 회사가 시장을 통째로 가져간다 — 1835년의 교훈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미래를 계산한 사람이 이긴다 — 캐터스트로피 모델링(재난 모델링)의 탄생

1987년, 보스턴의 카렌 클라크라는 여성이 세계 최초로 컴퓨터로 아직 오지 않은 재난의 손실을 계산하는 회사를 설립합니다. 당시 보험업계의 표준적인 계산법은 과거에 실제로 지급한 금액을 보고 미래 손실을 짐작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클라크는 정반대로 갔습니다. 수천 개의 가상 허리케인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해서, 기록에 없는 재난에도 가격을 매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캐터스트로피 모델링(Catastrophe Modeling)입니다. 여기서 캐터스트로피 모델링이란 아직 발생하지 않은 극단적 재난 시나리오를 수천 가지로 가정하고, 각 시나리오별 손실 규모를 통계적으로 추산하는 기법입니다. 쉽게 말해, 과거 데이터가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을 컴퓨터로 돌려서 위험의 가격을 산출하는 것입니다.

1992년 허리케인 앤드루가 플로리다에 상륙했을 때, 업계 예상치는 40억 달러 수준이었습니다. 클라크의 계산은 130억 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었고, 최종 보험 손실은 약 155억 달러로 집계됐습니다. 업계 경험치의 네 배에 가까운 숫자였습니다. 여러 보험사가 지급 불능에 빠졌고, 157년 전 뉴욕의 비극이 플로리다에서 그대로 반복됐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이 수치를 본 모든 이들은 '와 이 정도라고?'라는 생각이 들었을겁니다. 과거 경험이 있는 업계 전문가들보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현실에 훨씬 가까웠다는 사실이, 데이터 기반 접근이 직관을 어떻게 압도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이날 이후 보험업계의 규칙이 바뀝니다. 과거 통계 시대가 끝나고, 재난을 시뮬레이션하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클라크가 만든 회사 AIR은 훗날 인수됐고, 그 기술과 사업은 현재 베리스크(Verisk)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요약: 과거가 아닌 미래를 계산한 캐터스트로피 모델링이 보험업계의 표준을 바꿨고, 그 기술이 지금 베리스크의 핵심입니다.

 

독점 데이터와 베리스크 주가 — 강력한 해자, 더딘 성장

베리스크는 S&P 500 기업임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을 겁니다. 이 회사가 파는 것은 재난의 가격표입니다. 전 세계 보험사들이 매년 구독료를 내고 베리스크의 리스크 모델을 사용합니다. 베리스크 산하 기관은 2016년 캐나다 포트 맥머리 산불의 공식 보험 손실(약 40억 캐나다 달러)을 집계했고(출처: Verisk), 2025년 7월에는 캘리포니아 산불 보험료율 산정에 사용할 수 있는 첫 번째 산불 모델로 당국의 심사를 통과했습니다.

여기서 경제적 해자(Moat)라는 개념이 중요합니다. 해자란 경쟁자가 쉽게 넘볼 수 없는 구조적 경쟁 우위를 뜻합니다. 수십 년치 재난 데이터, 수천 개의 시뮬레이션 모델, 각국 규제당국과의 신뢰 관계 — 이 세 가지를 동시에 갖추는 데는 단순히 돈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겪었던 넷플릭스나 유튜브처럼 이런 구조의 데이터 기업은 경기 침체기에도 고객이 구독을 끊기 어렵습니다. 보험료 산정 자체가 이 숫자 없이는 이뤄지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최근 1년간 베리스크 주가는 35% 넘게 하락했습니다. 최근 1년 매출 30억 7천만 달러, 영업이익률(Operating Margin) 45%라는 숫자는 대단히 탄탄합니다. 영업이익률이란 매출에서 영업비용을 뺀 이익의 비율로, 45%면 구독형 데이터 기업 중에서도 상위권에 해당합니다. 문제는 성장 속도였습니다. 지난 분기 매출 성장률이 4%에 그쳤고, 회사는 연간 전망치를 하향했습니다. 시장의 반응은 냉정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바로 이 지점이 우리가 알아야 할 핵심입니다. 재난이 일상이 되는 시대에 베리스크가 필요하다는 명제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필요한 회사'와 '지금 사야 할 주식'은 완전히 다른 질문입니다. 월가 애널리스트들의 목표주가도 220달러에서 260달러 사이로 갈려 있습니다(출처: Yahoo Finance). 독점적 구조가 주가 상승 모멘텀을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 이것이 제가 이 케이스를 보며 가장 선명하게 체감한 부분입니다.

요약: 베리스크는 45% 영업이익률의 독점 데이터 플랫폼이지만, 4%대 성장률 둔화가 주가 35% 하락을 불렀다 — 해자와 모멘텀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베리스크(Verisk)는 어떤 회사인가요?

A. 베리스크는 S&P 500에 포함된 미국의 데이터 분석 기업으로, 전 세계 보험사들에게 재난 손실 시뮬레이션 모델과 리스크 데이터를 구독 형태로 제공합니다. 보험사가 보험료를 산정하거나 특정 지역의 위험을 평가할 때 이 회사의 모델에 의존하는 구조입니다. 흔히 보험 업계의 '인프라 기업'으로 불립니다.

 

Q. 캐터스트로피 모델링이 왜 중요한가요?

A. 과거 데이터만으로는 기후 변화로 인해 빈도와 강도가 달라진 재난을 제대로 가격에 반영할 수 없습니다. 캐터스트로피 모델링은 수천 가지 가상 재난 시나리오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재난'에도 손실 규모를 추산합니다. 1992년 허리케인 앤드루에서 업계 예측(40억 달러)과 실제 손실(155억 달러)의 격차가 이 기법이 왜 필수인지를 증명했습니다.

 

Q. 베리스크 주가가 왜 35% 이상 떨어졌나요?

A. 영업이익률 45%, 구독형 매출 구조라는 안정적인 펀더멘털에도 불구하고, 지난 분기 매출 성장률이 4%에 그치며 연간 전망치를 하향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시장은 독점적 위치만으로는 높은 밸류에이션을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필요한 회사라는 사실과 지금 매수해야 하는 주식이라는 판단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Q. 기후 변화가 심해질수록 베리스크에 유리한 구조인가요?

A. 구조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산불, 홍수, 우박처럼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재해가 전체 예상 보험 손실의 약 절반을 차지하게 되면서, 보험사들은 더 정밀한 리스크 데이터를 필요로 합니다. 캘리포니아 당국이 산불 보험료율 산정에 베리스크 모델을 공식 허용한 것도 이 흐름을 반영합니다. 다만 구조적 수혜가 매출 성장 속도로 즉각 이어지는지는 별도로 검토해야 합니다.

 

결론

1835년에는 지급한 사람이, 1992년에는 예측한 사람이 시장을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예측의 숫자 자체가 가격이 된 시대입니다. 베리스크는 재난이 잦아질수록 외면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진 회사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비즈니스 모델이 탄탄하다는 것과 지금 이 가격에 주식을 사야 한다는 것은 별개의 판단입니다. 45%의 영업이익률과 독점적 데이터 플랫폼이라는 강점은 인정하면서도, 4%대의 성장률 둔화가 보내는 신호를 가볍게 볼 수는 없습니다. 하늘이 뿌옇게 변할수록 이 회사의 계산기가 더 바빠지는 것은 맞지만, 그 바쁨이 주가로 이어지는 경로를 따져보는 것이 다음 단계입니다. 재난의 시대에 어떤 회사가 돈의 흐름을 조용히 통제하는지, 계속 들여다볼 가치가 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f5NPVLHTu6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