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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행 중 렌터카를 몰고 뉴욕 다리를 건넜는데, 며칠 뒤 카드 명세서에 낯선 항목이 찍혀 있었습니다. 요금소도 없었고 멈춘 적도 없었는데 카메라가 번호판을 읽어 자동으로 청구한 겁니다. 저는 그때 이 시스템 뒤에서 조용히 수수료를 챙기는 회사가 있다는 걸 처음 실감했습니다. 그 회사의 이름은 바로 베라모빌리티(Verra Mobility), 이 기업 불과 몇 개월 전에 하루 만에 주가가 70% 가까이 무너졌습니다. 통행료 인프라는 멀쩡한데 왜 그랬을까요.

맨해튼 입장료의 실체 — 문마다 다른 통행료 구조

맨해튼은 섬입니다. 차로 들어가려면 다리 아니면 터널, 그뿐입니다. 그런데 어느 문을 택하느냐에 따라 내는 금액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 사실을 제가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그냥 "비싸다"는 인상으로만 뭉뚱그려 알고 있었습니다.

뉴저지 쪽 세 관문, 즉 조지 워싱턴 브리지(George Washington Bridge)·링컨 터널·홀랜드 터널은 모두 항만청(Port Authority of New York and New Jersey) 소유입니다. 이지패스(E-ZPass) 피크 기준 16달러 79센트, 이지패스가 없으면 번호판 사진으로 청구서를 날리는데 23달러 30센트가 됩니다. 여기서 이지패스란 한국의 하이패스처럼 차량에 단말기를 부착해 무정차 전자 결제를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을 말합니다. 단말기 하나 유무로 매번 6달러 50센트 이상 차이가 나고, 매일 출퇴근한다면 연간 최대 4,400달러까지 벌어집니다.

반면 퀸스·브루클린 쪽 터널은 MTA(Metropolitan Transportation Authority), 즉 뉴욕 광역 교통공사가 운영해 이지패스 기준 7달러 46센트입니다. 같은 섬으로 들어가는 길인데 뉴저지 문의 절반도 안 됩니다. 그리고 이스트 리버에 걸린 브루클린 브리지, 맨해튼 브리지, 윌리엄스버그 브리지, 퀸즈보로 브리지, 이 네 개는 뉴욕시 소유라 100년 넘게 무료였습니다.

공짜 문이 있으니 당연히 트럭들은 몇십 분을 돌아서라도 공짜 다리로 진입했습니다. 결과는 예측 가능했습니다. 공짜 다리가 뉴욕에서 가장 막히는 길이 됐고, 인근 골목까지 트럭이 들어찼습니다. 돈을 안 낸 대신 시간으로 낸 셈입니다. 가격이 0이면 수요가 폭발한다는 경제학 원리가 맨해튼 지도 위에 그대로 그려진 겁니다.

이 상황이 바뀐 것이 바로 혼잡 통행료(Congestion Pricing) 제도입니다. 혼잡 통행료란 특정 도심 구역으로 진입하는 차량에 추가 요금을 부과해 교통량 자체를 가격으로 조절하는 정책입니다. 제 카드 명세서에 찍혔던 'CRG' 항목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맨해튼 60번가 이남 구역, 즉 미드타운과 다운타운으로 진입하는 승용차에 피크 시간 9달러, 심야 2달러 25센트가 하루 한 번 자동으로 부과됩니다. 공짜 다리로 들어와도 그 구역 안으로 내려가면 카메라가 알아서 잡습니다.

뉴저지 측은 소송까지 제기했습니다. 다리 통행료를 이미 냈는데 혼잡 통행료까지 이중으로 내야 하느냐는 겁니다. 이 분쟁은 현재 진행 중입니다(출처: MTA 혼잡통행료 연간 보고서).

  • 뉴저지 관문(항만청 운영): 이지패스 피크 16달러 79센트 / 우편 청구 23달러 30센트
  • 퀸스·브루클린 터널(MTA 운영): 이지패스 7달러 46센트 / 우편 청구 12달러 30센트
  • 이스트 리버 4개 다리(뉴욕시 운영): 무료
  • 맨해튼 60번가 이남 혼잡 통행료: 피크 9달러 / 심야 2달러 25센트 (하루 1회)
요약: 맨해튼 진입 요금은 운영 주체에 따라 0달러에서 23달러까지 천차만별이며, 혼잡 통행료 도입으로 "공짜 문"이라는 개념은 사실상 사라졌습니다.

 

고객집중 리스크 — 비자처럼 보였지만 비자가 아니었다

통행료 카메라와 무인 징수 시스템이 촘촘히 깔리는 걸 보면서 저는 솔직히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인프라 뒤에서 수수료를 받는 회사라면 경기 변동과 무관하게 꾸준히 돈 버는 구조겠구나.' 결제 건당 수수료를 취하는 방식은 비자(Visa)나 마스터카드의 비즈니스 모델과 구조적으로 닮아 있습니다.

베라모빌리티가 돈을 버는 핵심 경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렌터카 통행료 정산 대행입니다. 여행객이 렌터카로 톨게이트 없는 다리를 건너면, 나중에 렌터카 회사가 청구서를 보내는데 그 사이에서 번호판 조회와 요금 정산을 처리하고 수수료를 받는 구조입니다. 다른 하나는 카메라 시스템 운영입니다. 뉴욕시 적색 신호 단속, 과속, 버스 전용차로 위반, 브루클린-퀸스 고속도로 과적 단속 카메라를 30년 넘게 운영해 왔습니다. 2026년 2월에는 뉴욕시 교통국과 5년짜리 신규 계약을 체결했는데 규모가 9억 9,8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1조 4,000억 원이 넘습니다(출처: SEC EDGAR 베라모빌리티 공시).

겉만 보면 탄탄합니다. 통행료는 계속 오르고, 카메라 계약 규모는 1조 원을 넘습니다. 그런데 2026년 5월 26일, 회사는 공시 하나를 냈습니다. 최대 렌터카 고객 중 하나인 에이비스(Avis)가 계약 종료를 통보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에이비스 한 곳이 이 회사 전체 매출의 1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계약 종료로 연 매출 약 1억 4,000만 달러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고, 회사는 즉각 연간 실적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습니다. 다음 거래일 주가는 13달러대에서 4달러 선으로, 하루 만에 70% 가까이 무너졌습니다. 시가총액 약 1조 9,000억 원이 하루에 증발한 겁니다. CEO는 자리에서 물러났고, 미국 로펌들이 주주 소송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여기서 고객 집중도(Customer Concentration)라는 개념을 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객 집중도란 특정 고객 한 곳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며, 미국 기업의 사업보고서(10-K)에는 매출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고객이 있으면 반드시 공시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베라모빌리티의 보고서에도 이 위험은 진작부터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그 보고서를 찾아보니 에이비스 관련 리스크 문구가 분명히 적혀 있었습니다. 공개된 정보였는데 시장은 계약이 끊기기 전까지 그 무게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겁니다.

비자의 고객은 수백만 가맹점입니다. 한 곳이 떠나도 흔적조차 없습니다. 하지만 베라모빌리티의 렌터카 사업은 초대형 렌터카 회사 몇 곳이 전부였습니다. 인프라 기업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소수 대형 고객에 목줄이 묶인 B2B 대행 서비스사였던 셈입니다. 시장은 그 재평가를 단 하루 만에 끝냈습니다.

요약: 베라모빌리티는 탄탄한 통행료 인프라를 운영하면서도 에이비스 단 한 곳의 계약 해지에 주가 70%를 잃었습니다. 고객 집중도 리스크가 비즈니스 모델의 외형적 우수성을 한순간에 무력화한 사례입니다.

 

투자 리스크 관리 — 수수료 플랫폼 기업을 볼 때 먼저 확인할 것

제 10년 간의 투자 경험으로 보았을 때, 이런 종류의 기업은 처음엔 거의 예외 없이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경기 방어적이고, 가격 결정권이 있고, 인프라에 기반한 반복 수익 구조입니다. 그러니 더 꼼꼼하게 들여다봐야 합니다.

베라모빌리티 사태가 남긴 교훈은 하나로 압축됩니다. 비즈니스 모델(BM)의 우수성과 재무 리스크 구조는 반드시 분리해서 평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통행료 시장이 성장하고 카메라 계약이 1조 원을 넘는다고 해도, 그 수익의 상당 부분이 단 한 고객에 쏠려 있다면 그건 성장주가 아니라 집중 리스크를 품은 구조입니다.

수수료 플랫폼 기업에 투자할 때 제가 직접 확인하게 된 체크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먼저 사업보고서의 '고객 집중도' 항목입니다. 미국 상장사 기준으로 매출 10% 이상 고객은 반드시 공시됩니다. 이 숫자가 크면 클수록 계약 하나가 끊겼을 때의 충격도 그만큼 커집니다. 다음으로 2) 계약 갱신 주기와 위약금 구조입니다. 단기 계약이고 위약금이 없다면 언제든 이탈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3) 경쟁사 진입 장벽(해자)입니다. 카메라 시스템 같은 공공 계약은 한번 따내면 교체 비용이 크지만, 렌터카 정산 대행은 기술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아 대형 렌터카사가 직접 내재화하거나 다른 업체로 갈아탈 수 있습니다.

이 다리 옆에는 1921년부터 허드슨강 선박을 안내하던 작은 등대가 있습니다. 1931년 조지 워싱턴 브리지가 그 위에 생기면서 등대는 하루아침에 쓸모를 잃었습니다. 등대가 잘못한 게 아니라 옆에 더 큰 존재가 들어선 것뿐이었습니다. 베라모빌리티도 마찬가지입니다. 인프라는 그대로인데 고객 한 곳이 문을 닫고 나가자 시장이 그 존재 이유를 다시 물은 겁니다.

지금도 맨해튼 통행료는 오르고 있고 뉴욕시 카메라는 매주 새로 켜지고 있습니다. 그 성장의 수혜를 받을 기업이 어디인지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기업의 수익이 몇 명에게서 오는지를 먼저 확인하는 습관이 더 중요하다는 걸 이번 일로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요약: 수수료 플랫폼 기업 투자 시 비즈니스 모델 외형보다 고객 집중도·계약 구조·진입 장벽을 먼저 검토하는 것이 핵심 리스크 관리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조지 워싱턴 브리지 통행료가 왜 이렇게 비싼 건가요?

A. 조지 워싱턴 브리지는 항만청이 운영하며, 뉴저지와 맨해튼을 직접 잇는 유일한 현수교입니다. 하루 약 30만 대, 연간 1억 대 이상이 통과하는 세계 최다 통행량 현수교로, 인프라 유지 비용과 항만청 재정 충당을 위해 요금이 높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이지패스 단말기 유무에 따라 같은 다리를 건너도 최대 6달러 50센트 이상 차이가 납니다.

 

Q. 맨해튼 혼잡 통행료는 어느 구역에서 부과되나요?

A. 맨해튼 60번가 이남, 즉 미드타운과 다운타운 도심 구역으로 진입하는 차량에 부과됩니다. 톨게이트를 따로 통과할 필요 없이 구역 경계에 설치된 카메라가 번호판을 읽어 자동 청구됩니다. 승용차 기준 피크 시간대 9달러, 심야에는 2달러 25센트이며 하루 한 번만 부과됩니다.

 

Q. 베라모빌리티 주가가 하루에 70% 떨어진 이유가 뭔가요?

A. 핵심 렌터카 고객인 에이비스가 계약 종료를 통보하면서 연 매출 약 1억 4,000만 달러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고, 회사가 즉각 연간 실적 전망치를 낮췄기 때문입니다. 에이비스 한 곳이 전체 매출의 10% 이상을 차지했던 고객 집중 구조가 한꺼번에 드러나면서 시장이 기업 가치를 하루 만에 재평가했습니다.

 

Q. 미국 여행 중 렌터카로 통행료를 냈는지 어떻게 확인하나요?

A. 반납 후 며칠 내로 렌터카 회사가 카드로 통행료와 행정 수수료를 별도 청구합니다. 베라모빌리티 같은 정산 대행사가 번호판을 조회해 요금을 계산한 뒤 렌터카사에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명세서에서 렌터카사 이름으로 찍힌 소액 결제가 있다면 통행료 관련 청구일 가능성이 높으니 반납 영수증과 대조해 보시는 게 좋습니다.

 

Q. 고객 집중도(Customer Concentration)는 어디서 확인할 수 있나요?

A. 미국 상장사의 경우 SEC에 제출하는 연간 사업보고서(10-K)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매출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고객은 의무 공시 대상이라 리스크 팩터(Risk Factors) 또는 고객 항목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SEC EDGAR 사이트에서 회사명을 검색하면 무료로 열람할 수 있습니다.

 

결론

통행료 인프라는 그대로이고, 뉴욕 도심의 혼잡 통행료는 앞으로도 오를 가능성이 큽니다. 카메라 수도 늘고, 시스템을 운영하는 기업의 계약 규모도 커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베라모빌리티 사태는 시장이 성장하는 것과 그 성장을 내 것으로 만드는 기업 구조가 다를 수 있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저는 이 일을 보면서 앞으로 수수료형 플랫폼 기업을 볼 때 BM 설명보다 사업보고서 고객 집중도 항목을 먼저 펼쳐 보게 될 것 같습니다.

바위는 100년을 버티지만 계약은 통보 한 통으로 끝납니다. 수수료를 받는 쪽이 탄탄해 보일수록, 수수료를 내는 쪽이 몇 명인지를 먼저 세어 보는 습관이 결국 가장 실용적인 리스크 관리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OHptVF03RTI&list=PLF5Fz9qlNg7Aknod0AZJ8MQxc1vniuo7g&index=17&t=3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