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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살에 200억 달러짜리 헤지펀드를 만든 사람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첫 반응은 "또 AI 버블 탄 운 좋은 사람이겠지"였습니다. 그런데 레오폴드 아셴브레너의 궤적을 하나씩 뜯어볼수록 단순히 그렇게 넘기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닷컴 버블 때 전 재산을 날린 조지 길더(George Gilder)의 비극이 자꾸 겹쳐 보였습니다. 기술의 방향은 맞았지만 돈을 잃은 사람. 그 간극이 이번 글의 출발점입니다.

병목을 먼저 본 눈, 그리고 조지 길더의 교훈

아셴브레너가 2024년 공개한 165페이지 분량의 에세이 '상황 인식'의 핵심 주장 중 하나는 AI 발전의 진짜 병목은 모델이 아니라 전력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과장된 주장으로 들렸지만, 지금 돌아보면 방향 자체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 같은 하이퍼스케일러(hyperscaler)들의 2026년 설비 투자 전망치는 6,000억 달러대에 달하고(출처: McKinsey Global Institute), 전 세계 데이터센터가 계통 연결을 몇 년씩 기다리는 현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여기서 하이퍼스케일러란 전 세계 단위로 초대형 클라우드 인프라를 운용하는 빅테크 기업들을 가리키는 말로, AI 연산 수요의 핵심 수요처입니다.

제가 이 대목에서 직접 겪어보니 흥미로운 점이 있었습니다. 아셴브레너의 포트폴리오 구성을 분석하면서 그가 엔비디아보다 전력, 냉각, 데이터센터 인프라에 집중했다는 걸 확인했는데, 그 종목들이 이미 S&P 500 수익률 최상위권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즉 남들이 완전히 놓친 발견이라기보다는, 이미 시장이 감지하기 시작한 모멘텀에 가장 빠르게 올라탄 것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가 가장 무섭게 느낀 이름은 아셴브레너가 아니라 조지 길더였습니다. 길더는 1990년대에 '대역폭의 시대가 온다'라고 선언한 기술 예언가로, 1999년 그의 추천 종목은 평균 247% 상승했습니다. 정점에서는 그가 언급만 해도 하루에 주가가 50% 뛰었을 정도라 이를 '길더 효과'라고 부를 만큼 시장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기술의 방향은 정확했습니다. 그가 짚은 광케이블 인프라는 훗날 인터넷 경제의 토대가 됐습니다.

하지만 밸류에이션(valuation)을 무시했습니다. 밸류에이션이란 자산이 현재 가격 대비 적정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를 따지는 개념인데, 길더는 "나는 가격은 안 본다"라고 선언하며 전 재산을 추천주에 쏟아부었습니다.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대표 추천주 글로벌 크로싱이 2002년 파산했고, 길더는 집까지 압류당했습니다. 기술이 옳았다는 것과 그 기술로 그 시점에 돈을 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스킬이라는 사실을 그의 비극이 가장 잘 보여줍니다.

아셴브레너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싶었던 지점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그는 컨센서스가 패닉에 빠졌던 딥시크(DeepSeek) 쇼크 당일 매수에 나섰고, 강하게 전망한 종목에도 헤지를 설정했다가 랠리 예측 시 헤지를 정리하는 운용을 했습니다. 길더처럼 단순히 기술을 믿고 몰빵한 것과는 결이 다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실력이 검증됐다고 보기엔 표본이 너무 적습니다.

  • AI 병목 인프라 순서: 모델 → 칩 → 전력 → 냉각 → 계통 접속 → 메모리·스토리지
  • 길더의 교훈: 기술 방향이 맞아도 밸류에이션과 리스크 관리 없이는 파산 가능
  • 아셴브레너의 차이점: 헤지 운용과 역발상 매수 시도 — 단, 표본 수가 극히 적음
요약: 기술의 방향을 맞추는 것과 돈을 버는 것은 다른 능력이며, 아셴브레너는 길더보다 정교하지만 아직 사이클 검증이 남아 있습니다.

 

270% 수익률의 해부, 그리고 13F 공시의 함정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아셴브레너 펀드의 수익률이 270%라는 보도가 나왔을 때, 이 숫자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직접 수익률의 구성 요소를 뜯어봤는데, 크게 세 가지 층위가 겹쳐 있었습니다.

첫째, 같은 기간 반도체 지수가 82% 상승한 강세장이었습니다. AI 인프라와 전력 섹터는 그보다도 뜨거웠으니, 해당 테마에 집중 투자했다면 수익이 크게 나는 구조적 환경이었습니다. 둘째, 상위 10개 종목이 포트폴리오의 92%를 차지하는 극단적 집중 투자에 코어위브, 엔텔 같은 종목에 콜옵션(call option)을 활용했습니다. 콜옵션이란 특정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를 미리 사두는 파생상품으로, 주가가 오를 때 수익이 레버리지처럼 증폭됩니다. 맞으면 크게 벌지만 틀리면 크게 잃는 구조입니다. 셋째, 비상장주인 앤스로픽(Anthropic)이 누적 수익률 1,600% 가까이를 기록하며 포트폴리오의 3분의 1을 차지했는데, 이 투자는 일반 개인 투자자가 접근할 수 없는 인맥 기반 구주 투자였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 수익률 자체가 아니라, 수익의 상당 부분이 재현 가능하지 않은 요소들로 구성돼 있다는 점이 그랬습니다. 이 세 요소를 빼고 나면 순수한 종목 선택 실력만으로 설명되는 부분이 얼마나 남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13F 공시를 참고하는 것은 어떨까요? 13F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자산 1억 달러 이상의 기관 투자자가 분기마다 제출하는 주식 보유 현황 공시로, 쉽게 말해 분기 말 기준 보유 종목 스냅샷입니다(출처: U.S.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문제는 우리가 보는 시점에는 최소 45일에서 최대 135일 전의 사진이라는 겁니다. 그 사이에 포지션이 얼마든지 바뀌어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13F에는 숏 포지션, 해외 상장 주식, 비상장 주식이 포함되지 않아 아셴브레너 펀드의 최대 포지션인 앤스로픽은 공시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옵션 금액 역시 실제 집행 자금이 아니라 계약에 걸린 명목 가치(notional value)라는 점도 오해를 낳기 쉽습니다.

재무학 최상위 학술지 저널 오브 파이낸셜 이코노믹스(Journal of Financial Economics)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신생 헤지펀드는 초기 2~3년간 구조적으로 연 2.3%포인트 아웃퍼폼 하지만 이후 매년 평균 0.4% 포인트씩 성과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운용 자산이 작을수록 유동성 프리미엄을 누리기 쉽고, 절박함이 집중력을 만들어내는 신생 펀드 특유의 구조적 이점이 초반 성과를 부풀리는 셈입니다. 워런 버핏이 "운용 자금이 작으면 연 50%도 가능하다"라고 한 말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면 상당히 현실적인 발언입니다.

그래서 제 경험상 이런 수익률을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얼마나 벌었나"가 아니라 "어디서 벌었나"입니다. 수익의 원천이 재현 가능한 엣지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단일 강세장의 방향성과 레버리지와 비상장 인맥이 한꺼번에 터진 것인지를 구분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요약: 270% 수익률은 강세장 테마, 극단적 집중 레버리지, 인맥 기반 비상장 투자가 겹친 결과이며, 13F 공시만으로 그 실력을 판단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아셴브레너 펀드의 13F 공시를 그대로 따라 사도 되나요?

A. 따라 사는 것은 권장하기 어렵습니다. 공시는 최소 45일, 최대 135일 전 시점의 스냅샷이라 실제 포지션과 다를 수 있고, 앤스로픽 같은 비상장 투자나 숏 포지션은 아예 포함되지 않습니다. 공시를 참고하되, 그 안에 담긴 '병목을 찾는 논리'를 배우는 것이 훨씬 유용합니다.

 

Q. 스케일링 법칙이 AGI를 보장한다는 주장, 맞는 건가요?

A. 스케일링 법칙(scaling law)이란 연산량과 데이터를 늘릴수록 모델 성능이 예측 가능하게 향상된다는 경험적 규칙입니다. 그런데 이 법칙이 보장하는 건 다음 단어를 맞히는 오차가 줄어든다는 것까지이고, 인간 수준의 추론이나 AGI 달성을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업계 다수 연구자들도 현재 접근 방식만으로는 AGI 도달이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Q. AI 인프라 투자를 할 때 어떤 병목 순서로 봐야 하나요?

A. 모델 → 칩 → 전력 → 냉각 → 계통 접속 → 메모리·스토리지 순으로 아래를 파고드는 방식이 유효합니다. 어느 모델이 이기느냐를 맞추려 하기보다, 어느 레이어가 현재 공급 제약을 받고 있는지를 먼저 확인하는 습관이 실제 투자 결정에 도움이 됩니다.

 

Q. 2년 수익률만으로 투자 실력을 판단할 수 있나요?

A. 통계적으로는 어렵습니다. 저널 오브 파이낸셜 이코노믹스 연구에 따르면 신생 헤지펀드는 초기에 구조적으로 아웃퍼폼하는 경향이 있어, 2년 단일 강세장 기록은 실력과 운을 구분하기에 표본이 너무 작습니다. 버핏, 드러켄밀러, 폴 튜더 존스 모두 수십 년의 복수 사이클을 거쳐 검증됐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론

아셴브레너의 2년을 뜯어보고 나서 제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그의 실력의 단서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딥시크 쇼크 당일 역발상 매수, 헤지를 조율하는 운용 과정, 전력 병목이라는 렌즈 자체의 날카로움은 인정할 만합니다. 하지만 270%라는 수익률의 대부분은 테마 강세장, 콜옵션 레버리지, 그리고 일반 투자자는 접근조차 못하는 앤스로픽 구주가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 가설은 아직 검증 중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제 경험상 가장 위험한 패턴은 스타 투자자의 13F를 그대로 베끼거나, 화려한 예언 서사에 선동돼 이해상충의 구조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조지 길더는 기술을 맞췄지만 파산했고, 시장에는 언제나 그 시점의 강세장에 최적화된 누군가가 등장합니다. 우리가 가져갈 것은 그의 포지션이 아니라, 병목이 어디인지를 묻는 질문 방식과 수익의 원천을 해부하는 습관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unxu9CfZD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