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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월스트리트 앞 60층짜리 고급 아파트가 6년째 텅 빈 채 방치되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저는 부동산 개발 사업이 멈췄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늘 같은 질문을 떠올렸습니다. "저 손실은 결국 누구 장부에 남는 걸까?" 이 기울어진 빌딩 한 채가 나스닥 상장 은행의 머리를 싸매게 만든 이야기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매립지 위에 200m, 왜 기울 수밖에 없었나
모래 위에 쌓은 성이 기우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200m짜리 고층 건물이 그 위에 올라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뉴욕 맨해튼 남단 161 Maiden Lane 일대는 17세기 후반부터 매립이 이어진 땅입니다. 돌, 모래, 쓰레기, 심지어 난파선 조각까지 묻혀 있는 이 물렁한 매립층이 7m를 넘고, 진짜 바위층인 암반은 지하 47m 아래에 있습니다. 주변 고층 건물들은 대부분 그 47m까지 파일(pile)을 박아 내려갑니다. 파일 공법이란 건물 하중을 단단한 지반까지 전달하기 위해 긴 기둥을 땅속 깊이 박는 방식으로, 쉽게 말해 모래성 한가운데 튼튼한 쇠막대를 꽂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 건물은 달랐습니다. 개발사는 파일 공법 대신 토질 개량(soil improvement) 방식을 택했습니다. 토질 개량이란 땅속에 콘크리트를 주입해 지반 자체를 단단하게 보강하는 기법으로, 깊은 파일을 박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비용은 약 600만 달러, 우리 돈 90억 원 가까이 아낄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사전 보고서에 이미 "건물이 고르지 않게 가라앉을 수 있다"는 경고가 적혀 있었다는 점입니다.
2018년, 공사 중이던 현장에 측량 메모가 날아들었습니다. 건물이 북쪽으로 약 8cm 기울어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눈에 보이기 전에 수치가 먼저 잡아낸 것입니다. 뒤이어 유리를 붙이러 온 작업자들이 문제를 체감했습니다. 밀리미터 단위로 재단돼 온 커튼월(curtain wall) 패널, 즉 외벽 유리 패널이 골조에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더 황당한 건 그 이후입니다. 시공 측은 기울기를 상쇄하려고 위층 콘크리트 바닥을 반대 방향으로 비스듬하게 부었고, 결과적으로 법정에서는 이 건물을 두고 "바나나처럼 휘었다"는 표현까지 나왔습니다. 엔지니어들은 당장 쓰러질 구조는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270억 원짜리 펜트하우스를 팔 수 있는 완성품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 매립층 두께 7m 이상, 암반까지 깊이 47m — 파일 공법이 사실상 필수인 지반
- 토질 개량 방식 선택으로 약 90억 원 공사비 절감, 그러나 사전 보고서엔 불균등 침하 경고 명시
- 2020년 공사 완전 중단, 80채 중 70채 이상 계약됐던 물량이 대거 해지되고 구매자 소송 이어짐
CRE 대출, 은행 장부 어딘가에 묻혀 있는 기울어진 빌딩들
건물이 멈추면 그다음 질문은 하나입니다. 돈을 빌려준 쪽은 어떻게 됩니까?
이 건물의 선순위 대출을 실행한 곳은 이스라엘 뱅크 레오미의 미국 자회사였습니다. 선순위 대출(senior loan)이란 담보를 처분해 돈을 회수할 때 다른 채권자보다 먼저 변제받을 권리를 가진 대출을 말합니다. 1억 2,000만 달러를 약정하고 그중 9,000만 달러가 실제로 집행됐습니다. 후순위에는 맥(Mack)이라는 부동산 투자 회사가 6,600만 달러를 넣었습니다. 건물이 멈추자 두 채권자는 서로를 향해 소송을 쏟아냈고, 이 건물 하나를 둘러싸고 법원에 쌓인 서류가 1,400권을 넘었습니다.
2022년, 나스닥에 상장된 지주사 밸리 내셔널 뱅코프(Valley National Bancorp)가 뱅크 레오미 미국 자회사를 약 12억 달러, 우리 돈 1조 8,000억 원에 인수했습니다. 그렇게 이 기울어진 빌딩의 선순위 대출 채권도, 진행 중이던 모든 분쟁과 함께 밸리 내셔널 뱅크(Valley National Bank)의 장부로 넘어왔습니다. 뉴저지 본사의 동네 은행이 전혀 예상치 못한 위험을 통째로 인수한 셈입니다.
제가 2023년 미국 지역은행 위기를 지켜봤을 때도 비슷한 패턴을 보았습니다.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의 직접 원인은 금리와 유동성이었지만, 그 구조를 들여다보면 결국 장부 어딘가에 축적된 리스크가 임계점을 넘는 순간 터지는 패턴이었습니다. 상업용 부동산 대출, 즉 CRE(Commercial Real Estate) 대출은 — 여기서 CRE란 오피스, 호텔, 고급 주거 시설 등 수익형 부동산을 담보로 한 대출을 말합니다 — 경기 하강 국면에서 특히 부실화 속도가 빠릅니다. 그런데 주가 차트만 보고 있으면 그 속도를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밸리 내셔널 뱅크는 자산 640억 달러, 우리 돈 96조 원 규모의 미국 지역은행 상위권입니다(출처: 미국 연방준비제도). 그런데 이 은행은 CRE 비중이 유난히 높기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총 위험 기준 자본 대비 2023년 말 474%였던 CRE 집중도가 올해 1분기 329%까지 내려왔습니다. 미국 금융감독당국이 추가 점검 기준으로 삼는 300% 수준을 여전히 넘고 있지만, 방향은 분명히 개선 중입니다. 무수익 대출(NPL, Non-Performing Loan) — 쉽게 말해 이자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대출 — 비율은 직전 분기 0.87%에서 0.85%로 소폭 낮아졌지만, 1년 전 0.71%와 비교하면 여전히 높습니다. 대손충당금(loan loss reserve)이란 향후 부실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미리 쌓아두는 손실 완충 재원인데, 이 비율은 전체 대출의 1.18~1.20% 수준에서 큰 변화가 없습니다.
은행주 살 때 차트 말고 장부를 먼저 열어야 하는 이유
은행 주식을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튼튼한 회사 하나를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은행주를 매수한다는 건 그 은행이 보유한 대출 장부 전체의 이익과 위험을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 안에는 정상적으로 상환되는 대출도 있지만, 기울어진 빌딩처럼 언제 회수될지 모르는 채권도 섞여 있습니다.
제가 처음 미국 지역은행 ETF를 들여다봤을 때, 개별 은행의 CRE 집중도나 무수익 대출 비율 같은 항목을 따로 확인해야 한다는 걸 몰랐습니다. 미국 은행들은 분기마다 대출 구성을 공시하는데, 이 공시에서 세 가지 항목을 보는 습관이 생기고 나서야 비로소 차트 뒤에 있는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출처: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 FDIC).
제가 직접 확인하며 정리한 세 가지 점검 기준은 아래와 같습니다.
- 어디에 몰아줬나 — CRE 대출이 총위험 기준 자본 대비 300%를 넘고 있는지, 그 비율이 빠르게 늘고 있는지 확인한다. 300%는 불법 상한선이 아니라 감독당국이 집중도를 들여다보는 경보 기준이다.
- 못 받고 있는 돈이 늘고 있나 — 무수익 대출(NPL) 비율이 분기마다 올라가고 있다면, 장부 어딘가에서 기울어진 빌딩들이 자라고 있다는 신호다.
- 사고에 대비한 쿠션이 있나 — 대손충당금 적립률이 부실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면, 그게 제일 위험한 조합이다.
밸리 내셔널 뱅크의 주가는 1년 전 대비 50% 안팎 상승해 52주 신고가 부근을 기록 중이고,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목표 주가를 잇따라 올리고 있습니다. 시장은 이 은행이 부동산 부실을 잘 덜어내고 있다는 쪽에 배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판단이 틀렸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주가 상승과 실적 개선과 장부 건전성은 서로 다른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한국에서 저축은행이나 새마을금고 앞에 줄이 섰던 때를 떠올려보면, 부동산 대출 부실이 금융기관으로 번지는 경로가 우리에게 낯선 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기울어진 빌딩의 기울기는 눈에 먼저 보이지 않았습니다. 측량 메모가 먼저 잡아냈고, 유리가 맞지 않으면서 드러났습니다. 은행의 위험도 그렇습니다. 차트가 아니라 장부에서 먼저 흔적이 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161 Maiden Lane 건물은 지금 어떻게 됐나요?
A. 2020년 공사가 완전히 중단된 이후 6년째 방치 상태입니다.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이 꼭대기까지 올라가 낙서를 하고 내려올 때까지 아무도 몰랐을 정도였다고 하니, 현재도 사실상 폐건물에 가까운 상태로 보입니다. 밸리 내셔널 뱅크는 압류를 추진했지만 매수 업체의 챕터 11 신청 등으로 정리가 계속 지연되고 있습니다.
Q. CRE 대출 비중 300%가 왜 위험 신호인가요?
A. 300%는 법적 규제 상한선이 아니라 미국 금융감독당국이 은행의 상업용 부동산 집중도를 추가로 점검하기 시작하는 경보 기준입니다. 이 비율이 높을수록 부동산 시장이 흔들릴 때 은행이 받는 충격이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니, 단순히 숫자가 크다는 게 아니라 리스크가 한 곳에 몰려 있다는 신호로 읽는 것이 맞습니다.
Q. 밸리 내셔널 뱅크 주식, 차트 분석 결과는 어떤가요?
A. 저는 투자 추천을 드리는 자리는 아닙니다. 다만 현재 시장은 이 은행의 CRE 정리 속도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는 반면, CRE 집중도가 여전히 329%로 300% 기준을 넘고 무수익 대출 비율이 1년 전보다 높다는 점은 냉정하게 확인이 필요합니다. 분기 공시를 직접 열어보고 세 가지 지표를 본인 눈으로 확인한 뒤 판단하시길 권합니다.
Q. 무수익 대출(NPL)이랑 대손충당금이 뭔가요?
A. 무수익 대출(NPL, Non-Performing Loan)이란 원금이나 이자를 90일 이상 연체해 사실상 회수가 어려워진 대출을 말합니다. 대손충당금은 그런 손실이 실제로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미리 쌓아두는 손실 완충 재원입니다. NPL이 늘어나는데 대손충당금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실제 손실이 발생했을 때 은행의 자본이 직격탄을 맞는 구조가 됩니다.
결론
기울어진 빌딩의 문제는 결국 90억 원을 아끼려 한 선택 하나가 수천억 원짜리 분쟁과 6년간의 공백을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리스크는 개발사도, 시공사도 아닌 대출을 실행한 은행의 장부 위에 고스란히 얹혔습니다. 밸리 내셔널 뱅크가 당장 무너진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숫자는 분명히 개선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하나입니다. 다음에 미국 은행주나 금융주 ETF를 보실 때, 주가 차트 옆에 있는 분기 공시도 한번 열어보시죠. CRE 집중도, 무수익 대출 비율, 대손충당금 적립률, 이 세 줄만 확인해도 장부 깊숙이 묻혀 있는 기울어진 빌딩이 보일 수 있습니다. 측량 메모가 눈보다 먼저 기울기를 잡아낸 것처럼, 장부는 차트보다 먼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