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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한때 미국 증시를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밸류에이션(Valuation) 부담이 너무 컸고, 어딘가 더 싸고 덜 알려진 기회가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직접 유럽, 일본, 중국 시장을 하나씩 분석했고, 결국 제 손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대신할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안을 찾아 떠난 여정, 그리고 마주한 한계
미국 S&P 500의 주가수익비율(PER)이 역사적 평균을 한참 웃돌 때, 저는 진지하게 포트폴리오 분산을 고민했습니다. 여기서 PER이란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시장이 실제 이익 대비 얼마나 비싸게 거래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수치가 높을수록 고평가 신호로 읽힙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들여다본 첫 번째 후보는 유럽이었습니다. ASML이라는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하는 회사로, 시가총액이 약 7,000억 달러에 달하는 유럽 최대 기업입니다. 대단한 회사임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직접 비교해 보니 허탈했습니다. 엔비디아 한 곳의 시가총액이 4조 달러를 넘어 ASML의 여섯 배 가까이에 달했습니다.
문제는 단순한 규모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유럽은 세계 최고의 도구를 만들지만, 그 도구로 세상을 바꾸는 회사는 미국에서 나옵니다. 지난 10년간 미국 기업의 이익 성장률이 연 9%에 달하는 동안, 유럽은 2~3%에 그쳤습니다. 과도한 규제 환경이 혁신의 싹을 틔우기 전에 밟아버리는 구조가 고착된 탓입니다. 개인정보 보호나 플랫폼 규제에서는 세계를 선도하지만, 정작 그 플랫폼을 만드는 회사는 없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24년 닛케이 지수가 드디어 1989년 버블 고점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을 때, 저도 기대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났는지를 뜯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2023년 도쿄증권거래소가 상장사들에게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이하 기업은 개선안을 내라고 압박했습니다. PBR이란 주가를 장부상 순자산으로 나눈 값으로, 1 미만이면 회사를 통째로 팔아도 주가보다 더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일본의 부활은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를 30년 만에 그대로 복사한 결과였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중국, 그리고 해자의 실체
중국에 대해서는 솔직히 더 오래 고민했습니다. 성장 속도도, 기술 추격의 기세도 무시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2020년의 앤트 그룹(Ant Group) 사태가 제 생각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세계 역사상 최대 규모인 370억 달러짜리 기업공개(IPO)가 단 이틀 전에 전면 취소됐습니다. 여기서 IPO란 비상장 기업이 처음으로 주식 시장에 공개 상장하는 절차입니다. 창업자 마윈이 금융 당국을 비판하는 연설을 한 뒤, 정부가 상장을 통째로 뒤집어 버린 것입니다. 이후 마윈은 한동안 공개 석상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2025년, 알리바바 주가가 70% 넘게 반등했습니다. 짓누른 것도, 풀어준 것도 모두 정부였습니다. 살리고 죽이는 것이 시장이 아니라 베이징의 판단 하나에 달려 있다는 사실, 이 불확실성 위에 자본을 올려두기가 저는 두렵습니다.
이 모든 경험을 거치고 나서야 미국 시장의 해자(Economic Moat)가 정말로 보였습니다. 해자란 경쟁자가 쉽게 넘어올 수 없는 구조적 진입 장벽을 의미하는 투자 용어입니다. 워런 버핏이 즐겨 쓰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해자는 단순히 기업 하나의 경쟁 우위가 아니라, 시장 전체를 감싸는 시스템 그 자체였습니다.
- 전 세계 벤처 투자금의 약 70%가 미국으로 유입 (출처: PitchBook)
- 미국 내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스타트업) 775개 중 455개, 즉 59%를 이민자가 창업
- 이민자 창업 유니콘의 기업 가치는 10년 만에 약 30배, 5조 달러 규모로 성장
- 2025년 오픈AI, 앤트로픽 등 AI 5개 기업이 단독으로 840억 달러의 투자금 유치
이 숫자들을 보며 제가 느낀 건, 미국인이 더 똑똑한 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미국으로 모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파산이 낙인이 아니라 경력이 되는 곳, 실패 뒤에도 재도전을 허용하는 판이 지구 위에서 이곳 하나뿐이기 때문입니다.
비싸지만 탄탄한 펀더멘털, 숫자로 직접 확인했습니다
미국 시장이 비싸다는 말은 틀리지 않습니다. 저도 그 말에 공감하면서 오랫동안 진입을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데이터를 찾아보고 나서야 '비싸다'와 '거품이다'는 전혀 다른 말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현재 S&P 500 편입 기업들의 순이익률(Net Profit Margin)은 13%를 넘어 최근 15년 내 최고 수준에 와 있습니다. 순이익률이란 매출에서 모든 비용을 뺀 뒤 실제로 남는 이익의 비율입니다. 유럽도, 일본도 이 수치에서 미국을 따라오지 못합니다. 투하 자본 대비 이익 비율인 자기 자본이익률(ROE)도 20%를 웃돌아 글로벌 시장 대비 압도적입니다. 2000년 닷컴버블 때는 이익도 없이 주가만 치솟았지만, 지금은 그 비싼 밸류에이션을 실제 이익이 받쳐주고 있습니다.
2026년 기준 미국 증시의 시가총액은 75조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그 뒤를 잇는 9개국 증시를 모두 합친 것보다 큽니다(출처: World Bank). 엔비디아, TSMC, 브로드컴 같은 반도체 기업들의 시총만 합산해도 미국을 제외한 어떤 나라의 전체 증시보다 큰 규모입니다. 전 세계 중앙은행이 보유한 외환보유고의 약 60%가 달러이고, 전 세계 무역 결제의 절반 이상이 달러로 이루어집니다.
이 사실들을 확인하고 나서 제가 느낀 건 안도가 아니라 경외감이었습니다. 이건 단순한 규모의 문제가 아닙니다. 펀더멘털(Fundamentals), 즉 기업의 실제 이익 능력과 재무 건전성이 가장 탄탄한 시장이 미국이라는 뜻입니다.
위기에도 달러로 피난 오는 역설, 시스템적 복원력
가장 놀라웠던 건 위기 속에서의 미국이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진원지였습니다. 미국 은행이 터지고, 미국 부동산이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전 세계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을 찾아 몰려간 곳이 바로 미국 국채와 달러였습니다. 불을 낸 사람 집으로 온 동네가 피난을 온 셈입니다.
더 인상적인 사례는 2011년에 있었습니다. 신용평가사 S&P가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역사상 처음으로 최고 등급인 AAA에서 강등했습니다. 상식대로라면 신용을 잃은 나라의 국채 금리는 오르고 통화 가치는 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정반대 일이 벌어졌습니다. 강등 직후 미국 국채로 돈이 몰리면서 금리는 오히려 내려갔고, 달러 가치는 올랐습니다. 신용을 강등당한 그 순간에도 미국은 세계의 도피처였습니다.
물론 지금 미국 시장에 경고등이 없는 건 아닙니다.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는 약 3,974억 달러에 달하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현금을 쌓아둔 채 14분기 연속으로 주식을 순매도했습니다. 빅테크 7개 기업이 S&P 500 지수의 35%를 차지하는 쏠림 현상, AI 거품론, 밸류에이션 과열 리스크는 분명히 실재하는 위협입니다. 저도 이 부분만큼은 가볍게 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위험 요소들 위에 미국이 여전히 서 있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이 시스템은 스스로를 고치는 능력이 있다는 믿음입니다. 대통령이 누구든, 어떤 위기가 오든, 제도 자체가 개인보다 크게 작동합니다. 이 시스템적 복원력(Systemic Resilience)은 어떤 단일 국가도 아직 재현하지 못한 미국만의 유일한 무기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미국 증시가 거품이라는 말이 많은데, 지금 투자해도 괜찮은가요?
A. 고평가 우려는 사실입니다. 워런 버핏처럼 현금을 쌓아두며 신중하게 대응하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다만 2000년 닷컴버블과 달리 지금은 S&P 500 기업들의 실제 순이익률이 13%를 넘어 역대급 수준입니다. 비싼 주가를 실적이 받쳐주고 있다는 점에서, 거품보다는 고평가에 가깝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단기 변동성을 감수할 수 있다면, 분할 매수를 통해 접근하는 방식이 현실적입니다.
Q. 유럽이나 일본 시장으로 분산 투자하는 건 의미가 없나요?
A. 의미가 없다기보다, 기대를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직접 분석해보니 유럽은 규제 구조상 빅테크 탄생이 구조적으로 어렵고, 일본의 최근 반등은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 개혁을 그대로 따라간 결과였습니다. 환율 분산이나 방어적 포트폴리오 구성 차원에서 일부 편입하는 건 합리적이지만, 미국을 대체할 수 있다는 기대로 접근하는 건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Q. 달러 패권이 흔들린다는 말도 있는데, 달러 자산을 계속 들고 가야 할까요?
A. 달러의 영향력이 예전보다 줄었다는 의견도 있지만, 현재 전 세계 외환보유고의 약 60%는 여전히 달러입니다. 어떤 통화도 지금 당장 달러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게 데이터가 보여주는 현실입니다. 2011년 미국 신용등급이 강등됐을 때조차 달러 가치가 오른 사례를 보면, 단기적 악재가 달러 신뢰를 무너뜨리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Q. 중국 시장은 완전히 배제해야 하나요?
A. 배제보다는 리스크 성격을 정확히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이 맞습니다. 알리바바처럼 주가가 70% 이상 반등하는 기회가 생기기도 하지만, 그 반등을 가능케 한 것도 정부 결정이었습니다. 살리고 죽이는 권한이 시장이 아닌 정부에 있는 구조적 특성상, 투자 비중을 적게 가져가면서 철저히 단기 이벤트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결론
유럽, 일본, 중국을 직접 들여다보고 나서야 확신이 생겼습니다. 미국 시장은 완벽해서 선택하는 곳이 아닙니다. 불완전하고 비싸고 경고등도 켜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약점에도 불구하고 아직 대신할 수 있는 시장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본이 흐르는 방향을 이해하는 것은 투자를 하든 안 하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외면하기 어려운 과제입니다.
단기 거품 리스크는 분할 매수와 분산 전략으로 관리하되, 글로벌 자본의 중심축으로서 미국 시장이 가진 구조적 패권은 냉정하게 인정하는 것이 지금 시점에서 가장 현실적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여전히 이 시장을 공부하고 있고, 정답보다는 방향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